손에 쥔 걸 놓아야, 새 무기를 집을 수 있다
초기 서비스에서 말도 안 되는 성장을 만들어낸 분들, 업계에서 손꼽히는 서비스를 경험해보신 분들한테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있다.
내가 맞다고 확신하는데, 내 논리로 봤을 때 기존 방식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라고 판단되면 하고 보여줘.
사실 이게 조직에서는 썩 좋지 않은 애티튜드처럼 보일 수 있다. 근데 재밌는 건, 그 말을 하신 분들이 결국 증명을 해내시더라는 거다. 될 때까지 해낸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결국 증명하고 다시 리딩 포지션에 앉아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게 조직에 더 큰 임팩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매번 감명 깊은 순간이었다.
최근 이직하면서, 그 전 경험에서도, 나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내 생각은 이게 맞는데, 받아들여지는 시간이 답답하고 아깝고. 이 고민을 전 직장 대표님한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주말이었는데, 갑자기 시간 되시냐고 전화해서 상담을 요청했다. 심지어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전 직장 직원의 이직 고민을 들어주시는 상황,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웃기고, 또 얼마나 좋은 분이셨나 싶다.
그분도 똑같이 말했다.
일단 해봐. 한 달, 두 달, 세 달만 시간을 달라고 해. 내가 이거 해서 보여준다고.
업적을 세우신 분들한테 이 얘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결국 보여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고, 그래야 본인도 해낸다는 거다. 그리고 해보기 전까지는 본인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확신은 이곳에 있었다.
지금 나는 AI로 정말 많은 걸 전환하고 싶어 한다. 지금 없는 팀원 구성을 AI로 메꾸고 있고, 자동화할 수 있는 건 다 자동화시키고, 나는 결정만 하는 시스템을 진짜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성장한 폭, 새로 알게 된 지식들, 사고가 확장된 범위, 정보를 흡수하면서 판단하는 능력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수직상승해본 건 처음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다. 그런데도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시간을 맞춰서 아웃풋을 보여줘야하는 업무의 상황에서는 솔직히 더 선택하기가 어렵다.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여지는 선택을 하는게 더 좋은 비즈니스 애티튜드 같으니까.
전환을 하려고 할 때, 기존 시스템이 있으면 오히려 더 어렵다.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AI로 굴리려고 하면, 기존 방식이 더 느릴지언정 손에 익숙하고, 심리적 부담이 없고, 업무의 가시성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게 박살이 안 난다. 박살이 안 나니까 AI로 대체가 더 안 된다.
못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볼 때는, 손에 있는 무기를 다 잃어버리면 새 무기를 오히려 빨리 집을 수 있는데, 손에 뭘 쥐고 있으니까 못 집는 거다.
모든 일을 그냥 AI로 해야 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절대 안 된다.
이럴 경우엔 어떻게 되냐면, 새로운 판에서 새로 짜는 게 오히려 더 쉽다. 구조가 없는 것도 그렇고, 개발 단에 대한 부분도 당연히 그렇지만,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도 그런 것 같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뭐지, 가장 이상적인 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기존에 뭐가 굴러가고 있으면 이게 진짜 가장 어렵다. 뭔가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근데 실질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효율성이 안 나는 구간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때 잃을 게 많은 조직과 잃을 게 없는 조직이라는 게 갈린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걸 정말 잘 파악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 제로에서 새로 뭘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서 잃을 게 너무 적다. 이게 가장 큰 무기다. 큰 조직이나 복잡한 조직들이 제로를 무서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 중 하나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의 기세는 다르다.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숫자가 커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저 큰 숫자에 비교했을때 지금의 상태가 어디에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큰 꿈을 꾸겠다라는 목표를 세우지만 현실에서 시선을 집중하면 이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루라도 빠르게 이 판에서 정답을 만들어내고 증명하는 사람의 시장 가치는, 완전히 다른 레벨이 된다. 나는 앞서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전환해야만 한다. 선택권이 없다.
방법은 하나다. 기존에 있는 걸 버리고,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하고, 해보고, 거기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떡하지는 아까운 시간이다.
일단, 일을 벌린다. 그리고 그것이 되게 만든다. 물론 벌리는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필수. 맞다라는 확신이 있으면 소프트 한 방법이 아니여도 어쩔 수 없다. 밀어 붙여야한다.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직접 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일하자고 설득할 때, 다른 사람을 푸시하고 가이드를 주면서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제일 빠르고, 내가 보여주는 게 제일 빠르기 때문이다. 컨트롤하기 제일 쉬운 사람은, 인생에서 나 자신밖에 없으니까.
PR이 뭔지도 모르고, 개발자들이 그냥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직접 브랜치 생성해서 작업하고, 워크플로에 맞게 PR 올리고, 피드백 받은 수정 내용들 다시 반영해서 또 PR 올리고, 배포까지 하고 있다. 내 자신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발판삼아 진짜 많은 걸 배우고, 할 수 있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생긴 자신감으로 본 서비스 프로젝트도 해볼 수 있게 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온전히 몰입한 시간이 세 달이다. 개발을 어느 정도 배워본 주니어 개발자 수준의 사고는 생겼다고 생각한다.
근데 기존 방식으로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지려면 내 생각엔 최소 6개월, 비즈니스 사이드까지 포함하면 1년은 온전히 몰입해야 나오는 결과 아니었을까. 세 달 만에 여기까지 왔다. 개발에 대한 사고도 생겼지만, 다른 방면에 대한 사고의 방향도 정말 많이 생겼다.
앞으로의 세 달은 더 가파른 성장일 거다. 2배, 3배 같은 지표 성장이 아니라, 그냥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내 자신한테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내 뒤에 있는 나의 빽은 나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과거의 나 자신이다.
나는 이번 주말, 그동안 다른 개발 리소스나 우선순위 때문에 밀어놨던 일들을 제대로 손대볼 예정이다.
주로 방어 액션들인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도메인의 특성상 방어 액션이 상승 액션에 다른 서비스보다 훨씬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업사이드를 만들려고 밀어놨던 작업들이, 오히려 더 큰 업사이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동안 리소스 문제 때문에 못 했던 것들, 하나씩 다 해보려고 작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말에 실험해봐야 평일 정상 업무 시간에 도입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말 내내 내 질문 때문에 귀찮아질 팀원들한테는 미리 사과를 보내본다.
서비스 영향도 없는 백오피스 시스템에서 하나씩 작업하고 있었는데 유저 화면단에서 내가 작게 할 수 있는 일도 찾아보고 있다. 처음은 실수가 있겠지만 이전 경험을 해봤을때 나의 의지와 팀의 의지가 합쳐진다면 시스템 정착까지 길게 이주를 본다.
AI로 다양한 블로커들이 사라지는 세상인 것 같다. 이러니까 이제 진짜 휠을 돌리고 상승을 만들어내는 건, 본인이 쓰는 시간뿐이다.
근데 이게 "해야 돼서 하는 영역"과 "재밌어서 하는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만들고, 사람들이 쓰고. 그걸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니까. 약간 미친, 도파민 터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정말로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게 된다. 어짜피 해야하는 업무라면 이왕이면 즐겨보자. 아니면 내가 즐길 수 있는 영역에서 일하는게 더 중요해진 세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