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톤 25회 수상자가 사업에서 망한 이유
돌아봤을 때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지금은 꽤나 담담하게 이걸 바라볼 수 있게 됐지만, 이력서에도 이 부분은 크게 다루지 못했다. 이번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다시 돌아보게 됐고, 그래서 이 글도 쓸 수 있게 된 거 같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있다. 성공은 정말 많은 요소들이 결합해서 발생한다. 타이밍, 시장, 운 — 변수가 너무 많다. 반면 실패의 이유는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 실패를 제대로 바라보면 다시는 그 실패를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실패 확률만 줄여도 성공 확률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까지 쓰게 되었다.
난 해커톤을 25번 넘게 수상했다. 그 아이디어 중 하나가 이 서비스였다. 그냥 나는 앱을 만들고 싶었고, 앱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당시 IT 분위기가 뜨거웠고 투자도 활발하던 시기였다. 주변에서 VC분들의 창업 권유가 계속되었고, 어렵지 않은일 처럼 느껴졌다. 멋진 창업가가 되고 싶었던 거 같다.
배낭여행을 꽤 많이 다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산티아고 순례길, 이집트 — 단순히 유럽 배낭여행에서 시작해 점점 깊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을 만나게 됐다.
당시 막 라이징하던 게 "여행에 미친다"류의 콘텐츠 트렌드였다. 사람들이 여행지에 가면 유명한 사진 속 그 위치에서 비슷한 포즈로 찍고, 그걸 콘텐츠로 만들고 — 근데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거다. 캡처해둔 레퍼런스 사진 찾고, 위치 찾고, 찍어도 그 느낌이 안난다. 어떤 카메라로 어떻게 보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의 사진이 되기때문.
그래서 만든 게 여행 포토 콘텐츠 레퍼런스 앱이었다. 포토스팟 위치, 포즈 가이드, 촬영 장비 정보, 보정 방법, 감도 가이드까지 — 지도 기반으로 이 모든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콘텐츠를 빠르게 수집하기 위해 여행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들에게 연락했고 그게 작은 커뮤니티가 됐다.
디자인 베이스였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콘텐츠 제작에 자신 있었고, 서비스 홍보용 인스타를 만들어서 이미지를 올렸다. 저장 수도 꽤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실행력은 강했다. 빨리 해보고 빨리 만들어보는 데는 자신 있었다. 근데 그걸 뒷받침할 프레임워크(사고 틀)가 없었다. 마켓 리서치 방법, 지표를 읽는 법, 스터디 방법론 — 이런 걸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 "하면 된다"는 말만 들었고, 예비창업패키지 같은 지원사업도 받았지만 본질적인 학습은 없었다. 뒤늦게 하긴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회사에서 일해본 적도 없었고, 디자인 베이스라 UI/UX에만 집착했다. 예쁜 앱을 만드는 게 목적이 되어버렸다.
결론적으로 이 마켓은 너무 니치했다. 여행업 자체가 객단가도 낮고 리텐션도 안 나오는 구조인데, 그 안에서도 소수의 소수의 소수를 위한 서비스를 만든 거다.
TAM, 업사이드, BM(Business Model,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의 구조) 설계 — 이 시장에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전혀 계산하지 않았다.
좋은 걸 만들고, 재밌는 걸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비영리가 아닌 이상 Revenue(매출)를 만들어야 지속할 수 있는 건데, 그 생각 자체가 없었다.
유저의 효용은 꼭 개발된 앱이 아니어도 검증할 수 있다. 근데 나는 MVP도 없이 풀 프로덕트를 만들어버렸다.
이미지 기반 서비스라 서버 비용이 엄청 나왔는데, 해커톤에서는 그런 경험한 적이 없어서 몰랐다.
Retention(유저 재방문율), Revenue, Scale(확장) — 핵심 지표를 볼 줄도 몰랐다.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 앱은 유의미한 성과가 없었고, 오히려 서비스를 쓰고, 인스타그램 콘텐츠가 가져다주는 커뮤니티가 반대로 형성되면서 모임 서비스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계속 실행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업은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완전히 반대 교훈으로 라이브커머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제품을 팔아봤다. 그러다 라이브커머스의 본질 — 시각적이고, 영상이고, 실시간이라는 특성에 식품이 가장 잘 맞는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래서 식품 전문 라이브커머스 업체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유명했던 유튜버를 섭외했고, 대기업과 라이브 방송 협업 계약도 성사시켰다. (피봇하고 한달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유명 디저트 브랜드, 식품 분야에서 이름 있는 분들과도 컨택이 되면서 제품을 직접 수급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 시기라 대기업들도 라이브커머스를 시도해보고 싶어하던 타이밍이 맞물렸다.
시작하자마자 2달만에 월 매출 2천만 원 이상 이상을 달성했다. 라이브커머스 관련 책에 우리 서비스가 언급되기도 했다.
조금씩 데이터를 보면서 채널의 강점을 파악하고, 카테고리를 좁혀가고, 스케일업하거나 더 뾰족하게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근데 정말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서비스인가. 이걸 내가 하고 싶은가. 그 질문 앞에서 계속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다.
퍼블리 전 대표님 책 실패를 통과하는 방법에서도 정확히 같은 걸 느꼈다. 창업자가 힘든 길을 걸으려면 본인이 지속하고 싶은 가치와 닿아 있어야 한다.
결정적으로 사업을 그만두고 PM으로 커리어 전환을 결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마켓을 바꾸거나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다.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거다. 과열된 시장보다 빈 곳, 전환이 필요한 마켓을 전략적으로 고른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시점인가, 개척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가를 본다.
노코드든 MVP든, 최소 비용과 최소 시간과 최소 인력으로 빠르게 PMF를 검증한다. 유저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행위 — 그게 가치 증명이다. 스케일만 했는데 나중에 돈을 못 버는 구조가 되는 건 피한다. 돈이 벌려야 나도 이 사업을 계속 유지하며 유저들에게 효용을 줄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PMF가 확인되면 공격적으로 단시간에 스케일업한다. 오히려 그래야 비용이 덜 소모된다. 기존 시장을 침투할 경우 특히, 작은 팀의 특징을 이해하고 작은 팀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이게 사업 관점에서의 내 실패다. TAM을 못 봤고, PMF 검증 없이 만들었고, 지표를 볼 줄 몰랐다. 그러다 라이브커머스에서 매출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내 길이 아니었다. 실패의 이유는 명확했다. 근데 이건 사업 이야기일 뿐이다.
돌아보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업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 이야기는 2탄에서 다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