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선택이더라도 선택의 의미가 다르다.
나한테 가끔 고민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어떻게 해야 돼요, 라고 물으면 나는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선택지를 늘려봐.
선택지가 1개인데 그걸 선택한 사람과, 선택지가 10개인데 그중 하나를 선택한 사람은 다르다. 같은 선택이라도 삶의 방향성과 선택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20대를 그렇게 보냈기 때문이다.
회사도 여러 군데 다녀봤다. 대회도 나가봤다. 창업도 해봤다. 여행도 너무 많이 다녔다. 사람도 너무 많이 만났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내 친구들은 20대 초반에 방향성을 정하고 집중해서 이뤄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계속 탐색에 집중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7일. 삼등칸, 한겨울, 샤워 2번. 왜 타고 싶었냐고. 모른다. 그냥 타고 싶었다. 기차 안에서 카자흐스탄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러시아 애들이 몰래 술을 줘서 마시고.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친해지고 헤어지고. 일주일 동안 그게 반복됐다.
어릴 때 책에서 피라미드를 봤다. 언젠가 저걸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그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진짜 갔다. 피라미드 앞에 서니까 깨달았다. 생각하면 다 이뤄지는구나. 모든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피라미드도, 그냥 가고 싶어서 갔을 뿐이다. 대단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궁금했고, 궁금하면 갔다.
이 직장에 관심 있으면 들어가봤다. 저 환경에 관심 있으면 가서 체험해봤다. 이게 나랑 맞는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아니면 아닌 대로 배운 게 있었고, 맞으면 확신을 갖고 돌아왔다.
창업도 해봤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만들어봤다. 망한 것도 있다. 근데 망해도 남는 게 있었다.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어떤 팀에서 어떤 역할이 맞는지, 시장이 뭘 원하는지. 책이나 강의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여행이든 일이든, 부딪혀보면 돌발 상황은 어디에나 있었다. 여행에서는 비행기를 놓치고, 길을 잃고, 예약이 취소되고. 직업에서는 갑자기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팀이 바뀌고, 예상 못한 문제가 터지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결국 해내는 경험들이 쌓였다.
근데 나는 그 방황을 가만히 앉아서 한 게 아니다. 방황하고 속상해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가방 싸매고 나갔다. 해외든 어디든. 나가서 겪어보고, 부딪혀보고, 확인했다.
그렇게 선택지가 늘어났다.
맥주 카스에서 이런 광고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나는 그걸 보고 정말 열심히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친구는 같은 카피를 보고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기니까 가만히 있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문장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시선의 차이가 선택지의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20대에 찾은 안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확장을 하거나. 아니면 그때 하지 못했던 방황을 지금 하거나.그때 하지 않은 고민과 방황을 나중에 하고 있는 모습.
냉정하게 말하면, 어릴수록 방황과 탐색의 리스크가 적다. 용기도 더 크고, 회복탄력성도 더 좋다. 잃을 것도 적다.
그래서 단단해지고 있다.
돌아보니 탐색에도 단계가 있었다. 20대 때는 큰 탐색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뭘 하고 싶은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피라미드를 보러 가고, 이 직장 저 직장 들어가보고, 창업도 해보던 시기. 방향 자체를 찾는 탐색이었다.
그 다음은 중간 탐색이었다. 큰 방향은 잡혔으니까,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를 좁혀가는 시기. 여전히 흔들렸지만 범위가 달라졌다.
지금은 디테일 탐색이다. 방향도 잡혔고, 분야도 정해졌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어떤 방식이 더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해가는 중이다.
언젠간 다시 큰 탐색의 시간이 오겠지만 그때는 좀 덜 무서울 것 같다. 다양한 환경에서 흔들리면서도 나를 또렷하게 알아갔다. 나에 대해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피드백할 건 피드백하고. 성향, 특성, 기질적인 것까지 전부 다양한 상황에서 확인했다. 그렇게 나를 알게 되고 생긴 확신들이 있다. 결국 나를 믿게 되는 거 같다.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 제로투원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 정해진 길이 없다. 정답도 없다. 매뉴얼도 없다. 직접 부딪혀보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무섭다고 한다. 방향이 안 보이니까.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근데 나는 이게 무섭지 않다. 생각해보면 내가 20대 내내 해온 게 그거였다. 이유도 모른 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고, 피라미드를 보러 갔고, 관심 있는 직장에 일단 들어가봤고, 창업해서 망해보기도 했다. 늘 불분명한 길 위에 있었다. 거기서 방향을 찾아내는 경험을 반복했다.
제로투원은 결국 그거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방향을 잡고, 한 발씩 가보는 것. 기질적으로 맞기도 했겠지만, 내가 해왔던 수많은 탐색의 경험들이 이걸 더 나한테 핏하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나도 지치지 않고 더 시도해볼 예정이다. 과정에서의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더 느끼면서. 모두가 더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이 시도해보기를 응원한다. 그 과정의 순간에서도 너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결국 단단해질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