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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Jun 21. 2022

Via Negroli 2, Milano

하몽으로 연주한 바이올린과 시에스타

설렘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이를 알았는지 밀라노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들이 잦았다. 몸도 마음도 처지는 매일이었다. 특히 강의를 듣고 나면 졸음이 몰려왔는데 하루는 폰시를 따라 폰시 이모네 집에 갔다. 집은 두오모에서 걸어 15분 정도 거리였다.


Porta Venezia에 위치한 이 집은 넓고 구조가 매우 독특했다.

Porta Venezia 부촌으로 주변에 다양한 가게들이 많았고 아파트 출입구  높이는  키의 3배가량은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너무 다른 화려한 모습에 잔뜩 긴장한  폰시 옆에 찰싹 붙어 들어갔다. 집이 4층에 위치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우리  수동식 여닫이 문이 있는 엘리베이터와 달리 자동식이었다.


집 내부는 더 대단했다. 피카소가 현재 살아있다면, 조금 도시화된 피카소라면 이런 집에 살았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거실과 서재, 다이닝룸과 주방이 모두 방의 형태로, 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공간들 하나하나가 크고 각 공간에 창문이 있어 햇빛이 들어왔고 그 공간들 간에 문이 없어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게 넓고 트인 동시에 묘하게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폰시는 서재를 자신의 방으로 이용했는데, 책꽂이 앞에 아주 편안한 소파 배드와 카펫이 깔려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집의 틀에 벗어난 가구 배치와 다양한 액자, 조각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아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마오쩌둥 팝아트 그림과 마오쩌둥 조각이었다. 8인은 족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식탁 뒤로 거대한 액자가 있었는데 그 안에 마오쩌둥의 풍족해 보이는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으에?! 이게 뭐야!!”


얼굴을 보고 기겁하자 폰시가 자지러졌다.


“하하하. 독특한 취향을 가졌어, 이 가족.”


팝 아트여서 미적으로 본다면 나쁘지는 않았지만 식사하는 공간에 걸어놓다니, 기묘한 광경이었다. 먹다가 체할 것 같은데… 어쩌면 가족이 모두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다이닝룸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다른 놀라운 점은 주방이었다. 이태리인의 음식과 요리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거대한데 예쁜 주방이었다. 한가운데 넓은 아일랜드가 자리했고 벽에는 큰 스토브와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엄마가 떠올랐다.


“우와… 우리 엄마가 꿈에 그리는 주방이야. 정말 좋다 이 집. 멋져.”


때마침 폰시 이모가 들어오셨다.


“Hola!”


“Hola! 이모 이 친구가 내가 말했던 지호야.”


“Ah! Hola Ji Ho!”


조금 어색한 영어 실력이었지만 누구보다 크고 환한 미소와 동작으로 맞이해주셨다. 이모는 정말 미인이셨다. 크지는 않았지만 마르고 탄탄한 몸매에 검은 긴 생머리, 작은 얼굴을 꽉 채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완벽한 비율로 두 남매의 엄마라고 믿기지 않는 외모였다. 예술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 집에 정말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주인의 모습이었다.


이모는 스페인인, 이모부는 이태리인으로 둘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둘은 똑 부러지는 모범생 딸과 수줍은 사춘기 중학생 아들이 있었고, 이후로도 딸을 몇 번 봤는데, 딸 성격은 정말 엄마 판박이 었다.


폰시는 이모와 친구처럼 대화했다. 그녀의 하루를 물어보았고 아이들의 하루를 물어보았다. 장난꾸러기 폰시의 모습에서 자상한 면모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잠깐의 인사와 대화를 마치고 나머지 집을 소개해주었다. 정말 아름답고 넓은 집이었다. 밀라노 도심 한가운데 60평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이 집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연이었다.

폰시는 그런 내가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정말 엄청나. 아름다워. 우와!”


“하하 그런가. 근데 아랫집은 더 대단해. 그 집은 두 집을 모두 사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집 바로 아래는 아들 피아노 연습용이고, 건너편에서 생활해. 거기는 심지어 더 넓고 발코니까지 있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아파트 주민들 불러서 파티도 해. 진짜 어마어마한 부자인 거지.”


넷플릭스 미드에서나 보던 이야기였다. 역시 끼리끼리라고, 아파트 주민들이 그렇게 친목 도모하는 상상을 하니 문득 이모부는 어쩌다 이런 엄청난 집에 사실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모부는 대대로 물려받은 사업을 운영하시는데, 고급 벽지 사업을 하셔. 그래서 이 집 벽, 천장 모두 이모부가 하신 거래. 워낙 까다로우셔서 엄청 오래 걸렸다고 하더라.”


역시 아트와 가까운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이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틀에 벗어나는 인테리어를 시도할 수도, 심지어 이렇게 감각적으로 가꿀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다 서재에 있던 아트북을 꺼내 폰시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곧 이모부가 귀가하셨다. 눈에 띄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유쾌하시고 열정적인 분이셨다. 큰 주방 안에 모여 시끄럽게 웃고 떠들다 보니 문득 허기졌다.


“지호!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어봤어?”


“있잖아! 대가가 엄청났지만.”


깔깔 웃으며 대신 대답하는 폰시를 꼬집으며


‘맛은커녕 구린 냄새만 기억나는걸.’


속삭이고는


“딱히.. 매일 집에서 먹어서요.”


“지호는 잘 안 먹어요.”


금기된 행동을 한 마냥 너무나도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모부는 갑자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호! 진짜 이탈리아 요리를 해주겠어. 난 정말 요리를 잘하거든. 폰시, 넌 이제 보조 셰프야.”


그렇게 둘은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메뉴는 이모부표 파스타와 프리타타였다.

열정적으로 파스타 면 종류와 끓이는 정도, al dante를 강조하며 요리 교실을 연 이모부는 지친 가장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청춘 같았다.

면을 끓일 동안 이모부는 계란을 풀었고 폰시는 치즈를 갈았다.


둘 사이를 기웃기웃하다 폰시와 바통터치를 하고 프리타타 만드는 일에 가담했다. 어느 정도 재료 준비가 끝나자 이모부가 와인을 꺼냈고, 낮 2시 반에 우리는 한 잔씩 마시며 요리했다.


주방 한가운데 위치한 아일랜드 끝에 희한하게 생긴 고깃덩어리가 자리했는데, 신기한 비주얼에 기웃거리자 폰시가 칼을 꺼내 들었다.


“이건, 하몽이야.”


“하몽?? 그 하몽?”


나무 받침 위에 올려진 이 돼지고기 다리는 폰시네 가족이 매해 이모에게 보내는 선물이라 한다. 도토리만 먹는 이베리코 하몽 중에서도 고급이라고…

폰시는 길고 얇아 쉽게 휘어질 것 같은 활처럼 생긴 칼로 하몽을 잘라주었다.


“우리는 이걸 ‘바이올린을 켠다’라고 해. 외출하고 입이 심심하거나 허기질 때 이렇게 한 조각씩 잘라먹어. 이렇게 긴 칼을 써서 얇게 얇게 써는 거야.”


한 손으로는 뼈를 다른 한 손으로 칼질하는 모습이 정말 속담과 같은 모양새였다. 회포 뜨듯 무심하지만 섬세하게 썰어 건네받은 하몽은 말 그래도 버터 같았다. 짭짤하면서도 입안에서 녹아버리는 맛에 눈이 번쩍 뜨였다.


맛에 감동해 칼을 들어 바이올린을 켜려는데, 보기보다 그리고 생각과는 달리 전혀 쉽지 않았다. 칼이 얇아서 잘 휘거나 두껍게 잘려버렸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적절한 두께로 한 조각을 구하고는 시험을 통과라도 한 마냥 와인으로 자축했다. 바로 폰시에게 칼을 넘기고 자리를 물러났다.




맥주까지 꺼내 마시며 웃고 떠들다 보니 요리가 완성되었고 폰시의 사촌 동생들까지 귀가해 온 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아일랜드에 옹기종기 모여 가족이 일원이 된 마냥 웃고 떠들며 식사했다. 이모 부표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처음 보는 ‘관찰 레’라는 햄으로 만든 파스타였는데, 쫀득쫀득하면서도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잘 찾으면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 않고 가격이 비싸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은 학원이나 직장으로 돌아갔고 나와 폰시만 남았다. 식곤증으로 나른해진 우리는 침대의 각 끝에 머리를 대고 누워 시에스타를 청했다. 폰시는 내 발을 끌어안은 채 잠에 들었다.



한 시간 가량 지난 것 같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있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날 밤 로마니아 친구 블라드의 집에서 저녁 파티가 약속되어 있었다. 블라드 숙소는 Lodi Tibb역 근처에 위치했는데 걷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폰시를 설득해 걸어가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4분 거리였지만 걸어서는 끝도 없이 걸리는 듯했다. 게다가 비가 점점 거세게 쏟아져 중간중간 멈춰 서야 했다.  


“Ah, loca loca.”


첨벙첨벙, 바지와 코트가 젖어도 깔깔거리며 재미를 강요하는 나를 보며 폰시가 중얼거렸다.


두오모와 학교를 지나 새로운 동네를 지나치며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와 생각하면 특별히 기억나는 대화는 없었지만 어느새 폰시를 진심으로 친구 이상으로 의지하며 좋아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듯 매일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성적 감정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으로서, 외딴곳에 떨어진 나에게 소속감과 안정을 주는 존재가 되어있던 것이었다. 초반과 달리 여자 김지호가 아닌 사람으로 나를 진정 아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폰시였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걷다 마트에 들러 술 몇 병을 사들고 드디어 도착했다. 동네는 매우 도심과 달리 매우 조용했고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거리에 사람도 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창문으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 블라드가 소리치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블라드의 절친한 친구 마리아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잠시 후 마커스도 도착했다.


이태리어 초급반 수업에서 친해진 일본인 친구 Saya도 도착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며 소소한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 온 마리아는 검정 긴 생머리에 작은 얼굴과 큰 이목구비를 가진 예쁜 친구였다. 그녀는 폰시와 나처럼 블라드와 항상 함께하고 생활했는데, 처음에는 예쁜 마리아와 건장하고 매력적인 블라드가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커플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반대로 블라드가 폰시와 나를 엮는 모습을 보며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며 바라본 점이 미안해졌다.


친구들에게 폰시와는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며 친구다, 폰시에게는 여자 친구도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순간,


“지호, 나 더 이상 여자 친구가 없어.”


순간적으로 정적이 돌았고,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어 폰시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걱정 마. 그냥 잘 안 맞아서 내가 헤어지자고 한 것뿐이니까.”


정말 아무렇지 않은 폰시를 보고는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이 날, 마리아는 폰시에게 은근한 호감을 표시하며 둘이 가까워졌다.


다음날 Saya와 당일여행이 계획되어 있던 나는 함께 먼저 일어났다.

귀갓길은 왔던 길보다 더 휑했다. 쌀쌀하기도 해서 그런진 몰라도 으스스한 동네였다. (실제로 위험한 동네라고 한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 메트로를 타려 했는데 역 안에는 노숙자들과 수상쩍게 어슬렁 거리며 걸어 다니는 아랍 남자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Ciao, bella.”


능글맞게 손을 뻗으며 몇 명이 다가왔고 순간적으로 위협과 불쾌함을 느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내뱉었다.


“Fuck off.”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해 하는 Saya 손목을 잡아끌어 빠른 걸음으로 메트로에 올라탔고 그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친구와 함께 한 덕에 여차저차 조심히 귀가할 수 있었고 우리는 다음 날 여행을 기약하며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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