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과유불급
심리학을 계속해서 접하니, 여러 의사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핵심 몇 가지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를 믿을 만한 사람과 이야기하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이게 안 해본 사람한테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의 유치하고 적나라한 거북스러운 감정, 욕구들을 쳐다보는 것도 그 과정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묵혀있던, 혹은 습관적으로 외면하던 감정들을 마주하기 시작하니 혼돈의 연속이었다. 한 번 쳐다보기 시작하니 계속 쳐다보게 되었고 때론 멈출 줄 모르고 빠져들곤 했다. 부정적 감정을 억압하기만 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된다고 하니 이를 직면하기 시작한 것은 맞는데, 어떨 땐 좀처럼 기분이 잘 나아지지 않고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심리학에서 말한 지혜가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잘하고 있는게 맞나 하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적도 꽤 많았다.
그러다 문득 부정적 감정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시기의 나를 위한 영화가 인사이드 아웃1, 이후 직면하던 과정에서 혼란을 겪던 시기의 나를 위한 영화가 인사이드 아웃2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두 영화를 같이 보니, 우리가 통상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이든,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이든 무엇이든 적절한 때에 흘려보내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1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오해를 바로잡는다. 기쁨이와 슬픔이를 앞세워, 부정적 감정이 보내는 메시지를 외면하고 긍정적 감정에만 집착하면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첫째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인데, 억지로 누르면 그게 사라지지 않고 눌렸다 훗날 더 크게 터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분노든 슬픔이든 부정적 감정은 우리에게 문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면 당장은 가짜 평화를 흉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외면한 문제는 결국 시간이 지나 같은 방식으로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번질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쁨 같은 긍정적 감정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건 우리가 요즘에 꽤 많이 듣던 메시지이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2가-사실 정말 이런 의도까지 가지고 만들었는지는 솔직히 자신 없지만-어쨌든 내가 해석하기에는 그 반대의 부작용도 보여준다고 본다. 그게 나와 같이 부정적 감정을 직면하다가 수렁에 빠지는 함정에 걸려 든 사람에게는 좋은 인사이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사이드 아웃2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단연 ‘불안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듯 불안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자기 성장을 독려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감정이다. 그런데 이 역시 지나치게 과해지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 극의 핵심 주제이다. 부정적 감정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고 하지만, 긍정적 감정과 마찬가지로 집착하면 어떻게 되는가? 불안이 뿐만 아니라, 슬픔이, 버럭이가 그렇게 독선적인 양상으로 조종대를 잡았어도 라일리가 고통의 심연에 빠졌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이 긍정적 감정에만 집착하는 것은 결국 그토록 원하던 행복, 기쁨과 같은 긍정적 가치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부정적 감정에만 집착하면 스스로의 마음을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가 후회돼서, 또 미래가 불안해서, 현재도 불만족을 찾으면 끝이 없어서 고통을 스스로 부풀린다. 현재 나에게 벌어진 외부자극은 3정도인데, 늘 그런 식으로 10으로, 20으로 부풀려서 자기 자신을 찌른다. 이것이 나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니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를 잘 이해해 볼 때, 우울, 슬픔, 불안, 분노 같은 감정도 소중하고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을 장기간 핵심 감정으로 설정해서는, 궁극적 목적으로 삼아서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러한 감정들을 잘 수용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정말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무한히 행복하고 기쁘기만 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한계를 잘 이해한 상태에서, 현실적인 행복들을 누리기 위함 아닌가? 고통 그 자체가 목적이었는가? 정말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볼 때 그 길을 선택하고 싶다고 말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부정적 감정이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이 유의미한 것은 사실이다. 성장에 대한 채찍질, 위기에 대한 감지, 때론 이를 운동이나 예술로 승화할 때 역설적으로 얻을 수 있는 큰 기쁨 등이 그렇다. 인간의 삶에서 어차피 부정적 감정들을 피할 수 없지만 잘 활용할 수 있다는 통찰은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한편으론 부정적 감정이 주는 효능들에 집착해 우리의 본래 욕구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는 생각도 든다. 난 개인적으로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감정은 다양하고 계속해서 순환한다. 그리고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따라서 하나의 감정이 오면 제대로 느끼고 흘려보내라. 그렇게 때 되면 자리를 비켜주어야 또 다른 소중한 감정이 그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물론 누군들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느낄까. 아픔을 솔직히 느끼고 왜 아픈지 공유하는 과정들은 필요하다. 하지만 보내야 할 때 보내지 못해 스스로를 고문하지는 말자. 결국 우리는 고통스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