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섣부른 오만에 대한 반성문
“비교가 마음의 지옥을 낳는다. 비교하지 않으면 모든 기질이 축복이 될 잠재력이지만, 비교하는 순간 이는 불행에 휘발된다.”
얼마전에 ‘예민함은 진짜 축복일까’라는 글을 썼었다. 그러고 또 얼마 안 돼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 무슨 변덕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단순 변덕이라기 보다는 그간 나의 경험과 배움의 한 성과라고 믿고 싶다. 일순간 혼란이 정점을 찍은 후 찾아온 깨달음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이전에 그 글을 써놓고 후련하기도 했지만, 이후 좀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스스로 내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글은 나의 자기연민과 피해의식, 그리고 남과 비교하며 만든 내 마음의 지옥에서 시작된 것임을.
애초에 예민함이 축복이기를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였다. 그 전제는 내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굉장히 복잡한데, 단적으로 예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민감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굉장히 둔감하거나 무관심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어쨌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에서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외부 자극에 대한 ‘전반적인’ 예민성을 말하는 것임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다른 기질, 특히 반대 기질과의 비교에서 시작된 나의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이 예민함만의 큰 장점도 있기를 바라는 절박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따금씩 접하게 된 ‘행복을 느끼는데 유리한 선천적인 기질은 존재한다’와 같은 메시지들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왜냐하면 내용을 살펴보면 나의 선천적 기질과는 정말 맞는 부분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미 생긴 피해의식에 확증 편향의 단서들로써 위에 더해졌고, 나의 자기연민은 더욱 더 불타올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정말 잘 알 수 있는가? 타인의 고통과 고충을 내가 알면 얼만큼이나 알고 있겠는가?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왔다. 그 부끄러움은 나와 다른 이를 더 폭넓게 이해하고, 스스로도 비교의 지옥에서 나오라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인생, 고통에 대해 쉬이 단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너는 나보다 편할 것이라고 단죄할 수 없다. 결국 애초에 삶과 삶은, 그리고 기질과 기질은 단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게 과거에 그 글을 쓰고 지금까지 짧은 시간동안 깨달은 것들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이전의 긴 시간동안 쌓인 나의 경험과 배움들이 도와준 것이라 믿는다.
나는 사람의 선천적 기질은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더는 행복에 유리한 기질이 있다는 말에 이전처럼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연구들은 다 나름의 근거가 있고 논리도 있다. 의미가 있는 통찰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나의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게 방치할 수는 없다. 어차피 삶이란 도화지에 어떤 이야기를 써 나갈 것인지는 나의 몫이고, 원하든 원치 않든 벌어진 수많은 삶의 단편들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정리해 나갈 것인지 또한 나의 몫이다.
나의 성격이 정말 예민하다면 그건 무슨 자극이든, 그리고 감정이든 그저 그게 좀 크게 보일 뿐이다. 결코 불행과 동의어가 아니다. 결국 희로애락의 삶의 물결에 빠져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의 몫일 것이다. 스스로를 불행이라는 물 속에 수동적으로 유영하게 방치하지 않겠다. 내가 살아오며 멋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불편함 속에서도 자기만의 가치와 행복을 찾기 위해 나아갔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기질은 선택할 수 있던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를 가지고 더 이상 스스로를, 그리고 남몰래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우며 괴롭히고 싶지 않아졌다. 대신 나의 기질을 계속해서 더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이 건강한 어른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더 신중한 마음을 가지고 살펴봐야겠다는, 그런 ‘반성’을, 또 동시에 ‘다짐’을 부끄럽지만 지난 그 글을 지나오며 여기에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