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답을 찾는 방랑자에게 준 혼란 혹은 안식
삶의 정답을 찾는 이들은 왜 이를 찾는가? 이에 의존하기 위해서 아닐까? 하지만 찾고 찾아도 그 ‘마스터(정답)’는 정말 존재할까?
나는 철학에 대해서 여전히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대학생 때 어쩌다 듣게 된 교양 철학수업이 기점이었다. 내가 혼자 방구석에서 생각했던 논쟁거리들을 고대에 이미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가 다뤘다니! 허무하면서 어쩐지 동시에 기뻤다. 아, 이래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면 안되는거구나. 사람은 배워야 하는구나. 홀로 어둡게 편협한 염세주의 개똥철학을 조립해가던 나는 희망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훨씬 똑똑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들을 공부하고, 이를 조합하면 뭔가 진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스스로도 싫어했던 염세주의에서 탈피하여 보다 희망차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취미처럼 관련 책이나 영상들을 종종 찾아봤다.
철학이나 심리학을 긴 시간 전공한 분들도 많은데, 여전히 많이 공부했다고는 절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배움엔 끝이 없고 앞으로 계속 배워나가야겠지. 다만 현재까지 중간 점검을 하자면, 공부는 의미가 있었지만 정답은 없었다. 전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줄 알게 되었을 뿐이지, 하나의 원칙에서는 도리어 멀어졌다.
나는 정답을 찾아 안정감을 찾고 싶었고, 쉬운 길을 찾고 싶었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고, 흔들림이 많은 세상살이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의지할 무언가를 내심 필요로 했던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 현인들이 언어를 다르게 쓸 뿐이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는 눈이 빛나며 마음속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런 환상들도 시간지나 사그라들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꿰뚫는 삶의 본질들도 있었으나, 결국 그들은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른 부분들도 많았고, 각자의 말이 다 합리성이 있어서 뭐가 더 맞다 틀리다를 정하기 애매한 문제들이 많았다. 이제와서 보면 당연한건데, 의지할 곳을 찾던 당시의 나는 머리와는 달리 이를 마음에서는 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지혜는 있었지만 정답은 없었다.
사실 이 <마스터>라는 영화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 다시 생각났던 영화다. 이 영화를 본 동기는 매우 단순했다. 평소 이동진 영화 평론가님의 팬인데, 그가 유튜브에서 한 외국 영화 월드컵에서 이 영화가 1등을 한 것이다. 그의 취향이 나의 취향과 늘 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영상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본 이 영화에 대한 첫 감상은 적당히 재밌었고, 적당히 이해갔고, 적당히 심오했고, 적당히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몇몇 리뷰와 해석들을 보고, 이후 더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진 않았다. 나에겐 그렇게까지 크게 와닿진 않은 영화로 그냥 흘려보냈다.
그런데 정답이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한 이후 이 영화가 종종 다시 생각났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프레디가 허허벌판의 모래판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지 않고 떠나는 그 장면이 계속 생각이 났다.
프레디는 결핍과 상처가 많은 인물이고, 그 불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겉으로는 괴팍한 언행을 일삼지만, 그것은 안에 있는 끝없는 혼란과 공허감을 견디지 못해 나오는 방어기제일 것이다. 그래서 더 랭케스터에게 끌렸을 것이다. 그에게 의지하고 그와 함께하면 자신의 그런 근원적 고통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프레디는 렝케스터가 자신의 삶의 외로움,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마스터’가 되어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랭케스터와 그 일행, 자신이 의지하던 공동체가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와 함께 모래밭으로 간 다른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한 때 정답이라 믿었던 것을 뒤로하고 혼란과 불확실성에 자신을 내던진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한없이 크게 열려 있는 허허벌판뿐이다. 그 허허벌판에는 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지도 않다. 그냥 정해진 목적 없이 활짝 열려 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게 다이다.
이후 프레디가 어떤 삶을 살았을 지는 나의 능력으로는 상상이 잘 안된다. 나름 몰입은 되지만, 그렇다고 썩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 인물은 아닌지라 별로 안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가 다시 ‘마스터’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추측 정도는 해본다. 바램이 있다면, 그가 보다 진솔한 자아성찰을 해나가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할 정답이 없다는 것은 큰 혼란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건 수많은 선택지에 대한 자유와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이 모호한 맛에 대한 입가심으로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이 의미 없다면, 도리어 모든 것이 의미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같이 필요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