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은 타인의 것일까? 어떻게 보면 난 지금 그냥 말장난을 하고 있는거다. 같은 자기연민이라도 나의 자기연민은 자기연민이라고 명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아니 어쩌면 그냥 관찰되지도 않고 자각되지도 않는 경우가 너무 많기에.
'자기연민'이라는 키워드는 눈살 찌푸려짐의 대상이다. 근데 어쩌면 그 자기연민이라는 건 결국 타인의 것일때 쉽게 관찰되는 것일까. 자기연민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굉장히 강한 자기연민의 순간을 가지는 걸 많이 목격해왔다. 그들은 그걸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런 스스로에게 자기연민을 가지지 말라고 평소처럼 다그치지도 못했다.
안좋은 것을 경계하고 잘 살아 보려고 하지만 유약한 한 인간으로써 별수없이 허점을 보이게 되는 것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얘기도 어느 순간의 나의 얘기였을수도 있기에. 다만 타인에 대한 엄격함과 자기기만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탄식과, 어떻게 보면 너무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자기연민이라는 가치에 대한 변호와 같은 마음이, 그런 순간 순간들에 나도 모르게 누적되어 왔나보다.
나의 아픔과 남의 아픔이 같을 수는 없다. 뭐 당연한 소리를 하냐고 할 수도 있다. 순진한 사람이 아니면 다 아는 소리 아니냐고. 다만 생각보다 이를 많이 잊고 살게된다, 특히 머리보다 마음이. 그래서 좀 웃기게 말하면 나의 꼴값과 남의 꼴값은 좀 다르다. 금방 좀 털어내고 일어나지, 왜 저렇게 꼴값이야. 스스로 컨트롤안되게 무너진 순간에는 나 또한 그러면서, 오만한 태도로 그냥 그렇게 그렇게...
이 글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로남불에 대한 분노 혹은 안타까움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역겨움에 대한 자기고백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은 조금은 쉬어보였던, 그래서 왜 뻔히 보이는 방법을 노력하지 않는지 답답해하고, 그 추한 자기연민이 오글거리고 보기 싫었던. 정작 나 또한 어떤 상황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자기연민을 비난하며 자신을 한없이 불쌍하던 그이들도 사실 그런 나의 모순과 비슷한 마음들이었겠지.
자기연민은 실제로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이미 위험하다는건 정론인 것 같다. 시야가 좁아지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하게 하는 괴물같은 마음.
근데 그게 다일까? 뻔한 말이지만 양날의 검이 아닐까? 앞서 말했지만 나의 아픔과 타인의 아픔은 좀 다르다. 하지만 나의 아픔을 제대로 연민하고 보내준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덜 다르게 볼 수 있다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자기연민을 악마화하지 않고 양날의 검으로 볼때, 비로소 연민이라는 것은 내 것이 될 수도, 타인의 것이 될 수도, 내 것이었다가 타인의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지 못할때는 그 자기연민이라는 것이 오로지 타인의 것으로 남겠지, 그래야만 하기에, 그 추한 것이 나에게 보여져도 그게 그 추한것이면 안되기에.
어떤 의지나 바램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어찌 남을 전혀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를 한번도 불쌍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억울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매번 씩씩하고 다 용서할 수 있을까. 너무 간절하게 억누르면 오히려 철저한 합리화 속에 가장 지독한 자기연민이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절대 자기연민이 아니고 다른거라며, 이건 그냥 타인이 다 잘못해서 생긴 어떤 정당한 감정일 뿐이라며.
차라리 스스로를 어떻게 연민해야할지를 고민하는게 낫지 않나. 어떻게 좀 덜 위험하게 남을 미워하거나 나를 잘 연민해줄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세상은 마냥 이상적이지 않기에 해결방법도 늘 예쁜 모양일수는 없다. 좀 못생긴 모양도 평소에 있어야, 남의 못생긴 모양들도 눈감아주지. 나는 그러면 타인의 자기연민을 이전보다 조금은 더 품어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가져봤던 연민의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