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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란으로 바위치기 Jun 15. 2023

암울했던 나의 학창 시절
배낭여행에서 답을 찾다.

<하고 싶은일이 처음으로 생긴 일>

나의 학창 시절은 쭉 암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못하고 소심한 그저 교실 뒤편 어딘가에 앉아 있을 만한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결국 고등학교도 대부분 입학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이 모이는 시골의 작은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 학교에 등교하던 첫날 난 패배자의 기분으로 흠뻑 젖은 무거운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아침에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릴 때면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의 중학교 때 친구들과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그 친구들이 모두 인생의 승리자로 보였고 내가 입은 교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몰래 숨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적응하는 것도 많이 힘들었다. 

그곳에는 나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친구들이 대부분 이였다.

그나마 한 명 있는 친한 친구가 결석하는 날에는 난 도시락을 함께 먹을 친구가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무기력과 불만으로 도배되었던 나의 고등학교 3년의 성적은 비참하다 못해 처참했기에 4년제는커녕 지원했던 전문대도 대부분 떨어졌다.

그리고 어렵게 지방에 있는 이름 모를 전문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20대가 되어서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레스토랑에 취직하여 서빙 일을 시작했다. 

그 시절의 난 빨래를 돌리고 널지 않아 세탁기 안에 밤새 그대로 있었던 축축한 유니폼을 꺼내 출근했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학창 시절의 내 모습과 별 다를 것 없이 여전히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정도의 삶을 이어갔다.

그때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뚱뚱한 내 몸에 맞지도 않는 옷들을 사 모으는 것이었다. 


그 시절 난 대학생이었던 언니와 함께 서울에 있는 작은 원룸에 살았다.

생활비와 용돈 마련을 위해 수학 과외를 정신없이 하던 언니가 어느 날 나에게 유럽 배낭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학생이었던 언니와 사회 초년생 이었던 나의 주머니 사정으로 인하여 경비는 정말 최소한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언니가 만든 여행코스를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툴툴거리며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니며 언니가 손짓 발짓 하며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차역과 예약한 숙소를 찾아다닐 때 내가 오로지 할 수 있었던 일은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짐을 지키며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고 게을렀던 나는 언니에게 여행 파트너가 아닌 또 다른 짐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언니는 한동안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유럽 배낭여행이 의미 있었던 점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처음으로 느껴 보았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기차 안에서 친해진 아저씨의 즉흥적인 소개로 갑자기 가게 된 몇 백 년 된 와인 저장고를 개조해 만든 지하 레스토랑. 그리고 그곳에서 난생처음 본 우리에게 맛있는 스파게티를 사주셨던 친절했던 아저씨.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3번이나 마주쳤던 네덜란드 농아 친구들,

수화는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그 친구들을 통해 알았다.


스페인에서 밤기차 예약을 못하고 탑승한 이유로 여러 명의 독일 배낭여행 족과 기차에서 쫓겨나 근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잠을 자다 새벽에 비까지 맞으며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


배낭여행을 통해 많은 곳을 가 보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지 못한 경험들을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꽤 흥미로왔지만 그때마다 길게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나의 영어 실력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우린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 내 마음속에는 '나도 영어를 잘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도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시작으로 나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급 인생의 서막이 시작된듯하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도 난 종종 낯선 환경에 나를 떨어 뜨려 보곤 한다.

그것이 내 마음속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혹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답을 찾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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