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는 10개의 ChatGPT가 있다
이례가 연속되고 있다. 대법원장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긴 지 불과 9일 만에 이재명 대표의 대선 가도에 싱크홀을 만드는 판결이 출력되었다. 법원행정처 차장조차 국회 법사위에서 “이토록 신속한 판결은 전례가 없다”라고 인정했다.
이재명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 이틀 만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5월 1일이라는 절묘한 날짜를 골라 판결을 선고했다. 선고 당일, 판결 발표가 난 지 한 시간 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기다렸다는 듯이 출마 선언을 했다.
실제 사건 기록은 약 7만 페이지. 식음도, 수면도 포기한 채 하루 24시간 사건 기록만 보았다면 법원 측의 설명이 납득된다. 하지만 재판관들은 모두 살아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제 본 뉴스 속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앵커는 사용 중인 AI에게 '사건 기록 7만 페이지를 9일 안에 다 읽으려면 1초에 몇 쪽을 봐야 해?'라고 물었고, AI는 '9일은 총 77만 7천600초, 따라서 1초당 0.09페이지를 읽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그 많은 페이지를 그렇게 빨리 읽으려고 하나요?"
결국 현실의 물리 법칙을 뛰어넘은 놀라운 판결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을 선고한 대법관 모두가 ChatGPT를 사용했다고 가정하는 것뿐이다. 기록을 읽고 법규를 해석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과연 이 속도의 판결이 가능했을까.
주목할 만한 점은 졸속 판결을 지지한 대법관 10명 전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장해 온 수많은 판례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오직 "이재명을 막아 달라"라는 특정 진영의 명령에 응답한 셈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인의 진실성 여부를 법정이 아니라 언론과 시민에게 맡긴다. 미국의 경우 대선 토론 직후 언론사들이 후보들의 발언을 팩트 체크하여 거짓 주장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지적한다. 2024년 9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간의 대선 토론 직후 CNN은 트럼프가 30개 이상의 거짓 또는 왜곡된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고, 해리스는 한 개의 거짓 주장과 몇 건의 모호한 발언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판단은 시청자, 즉 시민의 몫이다. 정치인은 본디 끊임없이 악의적인 질문과 싸우며 때론 모호한 답변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다. 이런 민주적 과정 자체를 사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발상은 도리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공직선거법의 취지는 거짓으로 당선된 자를 낙선시키는 데 있다. 낙선한 후보의 재기를 꺾기 위해 적용하라고 만든 법이 아니다.
이렇게 모델링 된 판결을 보니 정녕 AI의 시대가 왔구나 체감이 된다. 향후 공직선거법 제250조와 관련한 유사 사건을 심리하게 되실 대법관들께서는 "제출된 방대한 자료는 법관 각자의 신념으로 전처리 후 AI에게 학습시켰고, 덕분에 이렇게 날랜 결과가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떨까. 그 편이 더 인간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