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안암동 어느 술집. 기다리던 골이 들어갔다. 나는 처음 보는 언니의 손을 맞잡고 팔짝팔짝 뛰다가 심판 이상하다고 욕을 하려는 참이다. 그물이 철렁했는데 득점이 아니라니! 비리 심판이야! 각자의 남자 친구들이 우리의 팔을 잡아당긴다.
“오프사이드라고. 좀 가만히 있으라고!”
“그게 뭔데?”
“공보다 먼저 가서 있는 거”
“먼저 가면 달리기가 빠른 거네. 왜 안 돼!”
오프사이드를 설명하는 테이블이 우리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각 테이블의 성급한 환호성이 일시에 구겨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가 없다면 각자의 골대 앞에서 다수의 공격수와 수비수가 몸싸움으로 공을 막거나 넣으면 그만인 것을.
화려한 개인기나 예술 같은 패스 따위는 애초에 필요 없었다는 것을. 결과적으로는 축구가 훨씬 재미없어질 것을. 아니, 축구경기 자체가 의미 없어질 것을.
아마도 오프사이드야말로 축구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룰이 될지 모른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경기를 끝까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 문득 그날의 오프사이드가 떠올랐다. 내가 이해한 오프사이드는 ‘내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다 무효’이기 때문이다.
등교가 목적이라면 내가 나서서 가방 챙겨놓고 옷 입혀주고 밥 떠먹여 주면 분명 빨리 끝난다. 빨리 끝나지만(=공이 골대에 들어가지만) 오프사이드다(=내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내가 설레발을 치지 않아야 아이들이 배운다. 가방은 전날 미리 챙겨야 편하다는 것을, 밥 먹으며 멍 때리면 눈앞에서 교문이 닫히는 걸 봐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선수들이 내 공을 데리고 상대의 골대까지 가면서 유능해지듯, 아이들도 스스로를 데리고 학교까지 가면서 그들의 유능함을 하나 더한다.
내 설레발을 누르는데 익숙할 즈음 코로나가 터졌다. 학습격차라는 무시무시한 말은 나를 검색으로 떠밀었다. 괜찮아 보이는 학습 콘텐츠를 찾으면 조금 있다가 더 좋아 보이는 뭔가가 계속 나왔다. 답이 없다.
폰을 내려두고 천장만 멍하니 보는데 안암동의 구겨진 환호성이 그려졌다. 내 설레발이 또 시작됐구나, 여기서 더 달리면 오프사이드구나 싶다.
길석님과 할머니 역시 나만큼 축구를 몰랐지만 오프사이드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제서야 짐작한다. 그저 기다려주고, 앞 뒤 없이 내 편이었던 그들이 참 고마웠다고, 30년이 지나서야 고백한다.
검색창을 닫았다. 오프사이드를 넘지 않음이 아이 성장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룰이 되길. 내가 길석님과 할머니에게 받은 선물을 내 아이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