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똥 누고 있을 때 부르는가

내 탓이오

by 음감

나도 몇 년 전에는 문 열고 똥 누기가 가능했다. 문만 열었나. 문 열고 노래도 불렀고 아이를 안은 채 화장실의 큰일 작은 일을 다 했다.


내가 화장실에 가면 세상이 무너지게 우는 아이 때문에 화장실 문을 닫을 생각도 못했다. 큰 애 때는 “노는 게 제일 좋아~”를 불러댔고(뽀로로 주제가) 둘째 때는 “타요 타요 개구쟁이 꼬마버스”(꼬마버스 타요 주제가)를 불러댔다.


기술은 늘 진보한다는 명제답게 위(노래) 아래(똥) 모두 끊지 않는 신공을 발휘했다. 힘주는 부분과 노래의 쉼표를 정확히 맞추는 기술이라니.



아이들이 조금 컸다. 대상 영속성이 생겼다. 단어는 거창하지만 엄마가 화장실 간다 해서 영원히 도망가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때 처음 화장실 문을 닫았다. 노래 안 부르고도 똥을 눌 수 있다니. 고요한 화장실은 감동이었다.


아이들이 더 컸다. 문장으로 말을 한다. 단어를 벗어난 게 기뻤는지 잘 때 빼고 계속 말했다. 오전에는 귀여웠고 오후에는 내 귀에서 피가 나는 거 같았다. 똥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오후에만 날 호출했다.


아이들은 내가 화장실 문 닫고 들어가면 문 앞에 앉아서 또 말했다. 나는 영혼 없이 “그랬쪄”, “오모나” 두 개로 돌려막기 했다.


뽀로로보다 타요 보다 훨씬 건성으로 하는데도 대답과 동시에 똥이 멈췄다. 2년간 수련했는데 어찌 반년 만에 제로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제야 30년 전의 화장실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어떻게 셋을 앉혀놓고 똥을 눴을까. 길석님은 어떻게 나의 그 많은 말을 다 받아내며 똥을 눴을까. 그들은 꾸준히 됐던 일이 나는 왜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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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본 대로 배운다지. 할머니 똥 누는 앞에서 회사 이야기를 하던 엄마처럼 나는 엄마 똥 누는 앞에서 짝사랑의 고충을 털어놨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


“그 오빠는 내가 누군지도 모를 거야”

“누군지 정도는 알겠지.
관심이 없을 뿐이지”

“엄만 누구 편이야? 관심이 없을 뿐이라니!!”

“관심 없을 수도 있지.
니가 좋아하면 다 너한테 관심 있어야 돼?
공산당이냐”


위로와 약올림, 그 중간쯤의 엄마는 똥 누는 중이다.


“아우, 진짜. 어머님?
어머님 딸이 짝사랑하느라 힘들다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짝사랑을 하랬냐.
어쩌냐. 이미 빠졌는데. 힘든 것도 할 수 없지.
그 머스매가 좀 더 똑똑해지면
널 알아볼 거야. 기다려봐”

“병 주고 약 주고. 아깐 공산당이라매”


그새 끝낸 길석님은 휴지를 뜯어 허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못 기다리겠으면
가서 고백하고 차이든가”

“악! 그건 죽어도 못 해. 안 해!”


길석님이 일어나 팬티를 손빨래할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문제의 그 머스매가 끝까지 똑똑해지지 않아서 더 떠들었다.


길석님도 귀에서 피난다는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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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놀이터에서 놀고 온 둘째가 흥분 상태로 “엄뫄아아아~” 하며 뛰어들어왔다. “엄마 화장실이니까 이따가...” 라고 하려다 문을 빼꼼 열고 말했다.

“엄마 여기 있어. 잘 놀았어? 오늘 재미있었어?”


나의 새로운 반응에 아이는 잠시 멈칫하다가 곧 화장실 문 앞에 털썩 앉아 놀이터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 만난 형아가 미끄럼틀에서 점프를 얼마나 잘했는지.

그 형아가 술래잡기를 하다가

학원 셔틀 놓쳐서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그래 놓고도 또 술래잡기하는데 얼마나 빨랐는지를 신나게 말했다.


나 역시 그보다 더 신나게 맞장구쳤다. 나와 아이가 신날수록 똥은 저 멀리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나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냥 일어났다.


신나게 얘기하는 아이의 볼이 빨갛게 상기됐다. 아이의 볼에 뽀뽀를 했다. 뽀뽀하는 나를 밀치며 남은 이야기를 더 하길래 확 안아서 아이 배에 내 코를 박고 뽀뽀를 했다. 아이는 간지럽다고 몸부림쳤고 나는 희미하게 남은 아기 냄새를 더 맡고 싶어서 코를 더 파묻었다. 갑자기 아이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이거 엄마야? 나 아닌데...”


나갈 줄 알았던 손님들이 다시 들어와서 대장이 화가 났는지 가스를 내뿜는다.


“너 때문에
똥이 끊겨서 그렇잖아.
이제 말 시키지 마”

이번에는 성공할 것인가. 내가 성공할 때까지 아이는 나를 부르지 않을 것인가. 미션 수행의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똥 누고 있을 때 아이가 날 부르는 건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말하고 싶은 열망이 엄마의 상태를 못 보게 한 거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그랬으면서 초등 저학년에게 ‘엄마 사정 좀 봐줘’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시시콜콜 나와 공유하겠다는 그 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내 똥은 내가 알아서 이어 붙이든, 킵하든 방법을 찾아야한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훅 들어왔다. 겨울바람이 쿰쿰할 리가 없는데 왠지 쿰쿰하게 느껴지는 오후, 놀이터의 낭랑한 아이들 목소리로 밀려난 겨울 하늘이 훌쩍 높았다.

20210115_112428.jpg 대왕 무지개 뜬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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