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김길석 님. 김재만 할아버지의 넷째면서 큰 딸이다. 위로 세 명의 오빠가 있다는 뜻이다.
연달아 아들을 셋이나 낳은 김복동 할머니는 넷째를 임신하자마자 당연히 아들일거라 확신했다. 돌림자 석을 고정시켜놓고 일찌감치 이름을 지은거지. 그렇게 ‘길석’으로 지어놨는데 얘가 딸이네?
잠깐 실망은 했지만 이미 아들이 셋이나 있는 터라 금방 괜찮아졌단다. 백옥같이 뽀얀 길석이는 단번에 보애기(길석님 별명)로 등극!! 뽀얀 아가라는 뜻이라나. 나 고등학교 때까지도 길석님의 외할머니는 길석님을 늘 ‘보애가아~’라고 불렀다.
처음 맞이한 공주님이 너무 예뻐서 다음에도 딸을 낳는다면 ‘길’을 써야겠다고 김재만 할아버지는 생각했고 정말 또 딸이 나왔다. 길은 있는데 그 다음은?
1950년대 태어난 여자아이 이름을 이정도로 고민하면 충분했는지 모두가 아는 ‘자’를 그냥 붙였다. 지금도 길석님의 단짝 친구(실제로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산다)인 길자 이모가 탄생한 순간이다.
그 시절의 공주 기준은 너무 낮았는지 길석님은 열 살 무렵부터 거동 못하는 증조할머니의 똥 기저귀를 갈았다. 기저귀를 갈았다...에는 필수 옵션이 따라붙는다. 똥을 덜어냈다, 기저귀를 빨았다, 널었다, 개켰다, 엉덩이를 씻겼다, 가끔 제자리를 이탈하는 똥의 방황으로 이불도 빨고 옷도 빨았다 등등 말이다. 길석님과 길자 이모는 세트로 요양보호사가 됐다.
길석님이 원래 손이 빠르고 야무지게 태어난 건지, 열 살 때부터 똥 기저귀를 갈아서 손이 빨라진 건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겠지. 그저 첫 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의 산 증인이 되었을 뿐.
내가 첫 아이를 낳고,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씻겨서 나오는 걸 본 길석님이 어느 날 말했다.
“내가 널 더 다그쳐서 공부를 더 시켰어야 하는데. 그래서 사짜 직업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으잉?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니가 기저귀 갈고 있는 걸 보니까 왜 슬프지”
“별 소릴 다한다. 엄마가 날 다그쳐서 공부 시킨다고 내가 했을까?”
눈꼬리가 한없이 내려가던 엄마 눈이 반짝! 하더니 길석님 눈으로 돌아온다.
“흐흐, 하긴.
내가 다그친다고
니가 퍽이나 공부했겠다.
최은영 님께서”
나는 절대지지 않았다.
“무려 20년을 내다보며
퍽이나 나를 다그쳤겠다.
김길석 님께서”
두 여자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짧은 웃음 끝에 길석님이 말했다.
“하긴, 애기 엉덩이 씻기는 건데 뭐 어때. 할머니 엉덩이도 아니고. 애기 엉덩이는 이쁘니까 괜찮아”
“엄마, 내가 사짜 직업이었어도 난 애기 엉덩이 씻기는 거 좋았을 거 같아. 그러니 엄마가 나 공부 안 시켰다는 소린 하지 마. 괜한 반성하지도 말고”
엄마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반성은 무슨. 너처럼 까탈스러운 애를 잡으려고 했다가는 내가 죽었을지도 몰라. 너 운전하다 말고 소리 지르는 거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벌렁거려”
“아우, 길석님은 좀 길석님스럽게 해야지. 이런 뒤끝은 길석님이 아니잖아!”
펄쩍 뛰긴 했지만 찔린다. 하긴, 내가 좀 사나웠지. 아니, 싸나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