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Oct 27. 2020

하다하다 음악밴드도 비대면

살아남아야 하는 비정규직

비대면 시대든 뭐든 살아남아야 하는 건 모든 사람에게 공통 명제다. 비정규직에게도 예외는 없다. 아니, 예외는 커녕 버티기 더 힘들다. 안전 장치가 아무것도 없으니.


2학기가 되면 코로나도 풀리겠지.. 하던 기대는 사라지도 또 주1회/2회 등교가 됐다. 나는 1~3학년이 모두 있는 밴드부를 맡았는데 연습은 고사하고 모이기 자체가 어렵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는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정규직이라면 병가를 냈겠지만 비정규직한테 그런게 어딨어! 방법을 찾아야한다!!

병원에서 기다리면서. 자칫 인대 건드리면 수술이 커진다고 해서 겁먹었음


얘들아.
각자 파트 연습하는 거
동영상 찍어서 선생님한테 보내!

일단 아이들에게 공지했다. 곡별로 레퍼런스 할 링크를 줬다. 안그러면 템포를 맞출 수 없으니까.


모이기도 힘든데 개인별 평가서도 써야한다. 다시 공지했다.


생기부 성실성 10점만점.
3분 이상 연습영상
주1회 올리면
10점 다 가져가는거고,
못 올리면 1점씩 깎이는거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아이들 기준에 공정하니 더이상 말은 없다. 비정규직 주제에 서열화를 조장한다고? 파트별로 모이는 일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성실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이거 말고 다른게 또 있다면 언제든 말해주길.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 나는 살아남아야 하는 비정규직이니까.


셀프 지도교사로 영상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레퍼런스를 놓고 따라하는 연주를 찍어보면 내가 어디를 더 연습해야 하는지 단박에 파악된다. 핸드폰이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영상찍기가 어려웠으면 방법 찾기가 더 어려웠겠다.


각자 연습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모였다. 이번에는 밸런스 문제.  부스 없이 다이렉트로 치고 나오는 드럼 소리는 너무 크고, 보컬은 컨디션이 안 좋으시대고. 베이스 기타와 일렉기타는 저음을 깎을 수가 없어서 계속 웅웅거린다. 이대로 영상을 뜨면 드럼 소리가 주인공인 무거운 사운드가 나오겠지.

일단 하자.
모일 시간이 없잖아.
잘하든 못하든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봐.

보컬이 말한다. 한 키만 낮춰주시면 안되요? 너무 힘들어요.


이 곡 니가 정했잖아.
이제 와서 갑자기
코드를 바꾸라고 하면
1학년 기타는 어쩌니.
그냥 해.
다 맞출 수 없어.
대신 내가 보정할게.


전체 영상을 받았다. 보컬과 기타는 따로 다시 찍었다. 따로 찍은 영상에서 소리만 추출해 보컬 음높이를 보정하고 기타의 저음을 깎았다. 전체 영상에 합쳐보니 기타 소리가 안들린다. 건반으로 기타를 쳐서 위에 얹었더니 그나마 좀 들린다.


하여튼 영상이지만 한 곡이 완성됐다. 원래 라이브 공연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다 취소됐단다. 라이브 공연 대신 영상을 남기자고 담당선생님과 합의했다. 만약 이렇게 라이브를 한다면? 음.... 지도교사 이름이 올라가서 더 스트레스 받았을지 모른다. 차라리 혼자 후보정을 하는게 나을지도.


 비정규직에서 살아남겠다고, 시키지도 않은 후보정까지 해가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 영상을 본 다른 학교 밴드부에서 연락이 오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축사에서 그랬다. 지나온 모든 것이 다 연결 되어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다고. 내게 연결된 것들은 비정규직에서 다음학기 재계약을 위한 그림이었던가. 연결도 빈익빈 부익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매주 나가지 않아도 되서, 아직은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왔을 때 빈집이 아니어서 나의 비정규직을 긍정할랜다. 지겨워질 무렵 적당히 손 뗄 수 있어서 좋다고 할랜다. 나는 언제 정규직이 되나 목빼고 기다리느니 내가 만들수 있는 만족을 스스로 찾을랜다.


그렇게 이어온 19년차 비정규직이 올 가을 지나면 20년을 채우겠구나. 20년차엔 뭔가 돌파구가 있을까. 돌파구가 없다는걸 인정하는게 돌파구일지도.



작가의 이전글 해도 미쳐, 안 해도 미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