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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24. 2020

62년 만에 이것을 가졌다면

프라이드 쓰리도어

“엄마 할머니는 어디 살아?”

“하늘나라. 그래서 사진으로만 볼 수 있어”    

 

코로나는 명절까지 바꿨다. 애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대신 내 할머니를 만나러 나서는 길이다. 운전석에는 남편이 앉았고 나는 조수석에, 아이 둘은 뒷자리에 앉았다.       




회색 프라이드 3도어 중고, 우리 집 첫 차가 4학년 겨울에 왔다. 자가용이 생기다니!


해 질 무렵부터 마당이 보이는 안방 창가에 앉아 아빠를, 아니 프라이드를 기다렸다. 차고 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면 나는 팝업북 마냥 튀어나와 창을 폴짝 넘었다.


차고 자바라가 촤라라락 열리는 모습을 조수석에 앉아서 보고 싶어서다. 아빠는 내가 앉을 때까지 늘 기다려줬다. 차고 바로 앞에서 차고 안까지, 민망하리만큼 짧은 거리지만 내 하루 일과에서 중요한 의식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프라이드의 조수석을 차지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내가 자가용을 타는 날은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갈 때뿐이었다. 조수석에 앉고 싶었지만 이곳은 할머니가 유일하게 허락하지 않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할머니가 평소에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이 많았다면 “나도 앞에 앉아볼래”라고 우겨 볼 수도 있었겠지만 ‘딱 하나’ 앞에서는 어떤 부연설명 없이 나도 입을 다물었다.    

  

열한 살에게도 첫 차였지만 예순두 살 에게도 첫 차였다. 설렘의 무게로 치면 당연히 할머니 쪽이 더 컸겠다.


할머니는 이십 대 초반에 이미 남편을 잃고 아들 둘과 남았다. 40년 후, 그 작았던 아이가 마련한 자가용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랜 세월이라 무덤덤해졌을까, 자식들 보기 민망해서 벅참을 숨겼을까. 이제야 할머니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기대 보면 할머니는 완벽하게 약자였다. 그 시절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년에 그 정도 살았으면 팔자 편 거 아니냐고 할 수 없다. 더 힘든 사람이 있었다고 해서 나의 힘듦을 말할 수 없다면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을 테니.


할머니는 자기 삶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대신 프라이드 조수석을 손녀에게도 내어주지 않았다. 언어를 갖지 못한 자의 마지막 방어일지도 모르겠다.      

출처 : Carlab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3년째다. 이만큼 세월이 쌓이니 할머니 생각이 나도 울지 않았다. 할머니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썼다고 자랑하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언어를 갖는다는 건 지난 일들까지도 선명해지는 일이었다. 언어를 글로 풀면서 내게 할머니가 이만큼 선명해졌는데 납골당의 현실은 손이 닿지도 않는 유리 속 작은 항아리였다. 처음 맞닥뜨린 간극에 나도 모르게 무너졌다. 당황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뒤로하고 오래 울었다.      


할머니, 잘 지냈어?
이번 추석은 각자 집에서 머문대.
전 세계적으로
골치 아픈 전염병이 돌거든.

밖에 못 나가는 동안
할머니에 대한 글을 썼어.
할머니가 봤으면
‘우리 강아지 별 걸 다 하네?’ 했겠지?  

할머니, 나도 운전해. 뜬금없이 뭐냐고?
할머니랑 드라이브 한 번 못해본 게
이제 생각났어.
할머니 병원에 있을 때
이미 운전했었는데.

할머니를 조수석에 앉히고
자유로라도 달려볼 걸.

내가 운전을 좀 더 빨리
시작했어야 했을까.

운전을 할 만큼 컸다면
할머니의 의미 없는 수술을
막을 수 있었을까.

에고. 그만 말해야겠다.
울다가 집에 못 가겠어.
        다음에 올 땐 안 울게.         


할머니와 명절 인사를 나누고 납골당을 나왔다. 그새 쑥 큰 나무들의 이파리마다 햇빛이 머물며 깊은 그림자를 만든다. 십자가 위의 쨍한 하늘에 다시 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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