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손녀, 누가 더 중한가(1)
유치원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유치원에 가고 싶어 졌다. 유치원이 정확하게 뭔지 잘 몰랐지만 **유치원 이 박힌 가방이 내 인생 최초의 신상이었다고나 할까.
할머니랑 매일 보는 <개구쟁이 스머프>보다 훨씬 재미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 유치원 알아? 가봤어?”
“내가 무슨 유치원을. 니 엄마한테 물어봐”
퇴근한 길석님에게 선포했다.
“엄마, 나 유치원 갈래”
집에 오자마자 쌀 씻는 길석님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유치원이 뭔지는 알고?”
“당연히 알지. 가방 주는 데잖아!”
길석님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입학식 날. 길석님은 오전 반차...도 아니고 한 시간만 늦게 출근한다고 양해를 구했다나. 아이 유치원 입학식에 엄마 왔음! 의 증명사진만 후다닥 찍고 가버렸다.
할머니는 양손에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유치원 입학식을 지켰다. 나의 목적은 유치원이 아니라 유치원 ‘가방’이었기에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 가방과 오래오래 사랑에 빠질 줄 알았다. 일곱 살의 예측이란 얼마나 허약한지.
나 일곱 살 때도 있었고 내 아이 일곱 살 때도 있는 노래가 있다.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이 노래는 왼손 엄지와 오른손 검지, 왼손 검지와 오른손 엄지가 교차해야 한다.
이렇게 교차하면 정말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가는 것 같다.
시작을 이렇게 해도 어느샌가 내 거미는 엄지와 엄지, 검지와 검지가 만나버렸다. 이러면 줄을 올라가지 못하고 벌렸다 오므렸다만 하는 바보 거미가 된다.
선생님은 아침마다 거미 노래를 불렀고 내 바보 거미는 똑똑해지지 않았다. 바보 거미 때문에 유치원이 싫어졌다. 유치원 가방 따위!
“애미야, 은영이가 유치원이 싫다는데 어쩌냐”
퇴근한 길석님에게 할머니가 운을 띄웠다.
“은영아 왜. 선생님이 싫어? 누가 너 괴롭혀?”
“아니. 맨날 똑같은 것만 해. 지겨워. 뭐 하는 게 없어. 안 가고 싶어”
거미 얘기는 안 했다. 거미 이야기를 하면 내가 잘못한 거 같아서. 내가 유치원을 그만두는 건 바보 거미 때문이 아니라 유치원의 커리큘럼(이라는 말은 몰랐겠지만) 때문이니까.
“1분기 돈을 다 냈는데...”
길석님은 5월까지만 다니자고 했다. 4월에는 시장놀이, 5월에는 생일파티가 있다고. 안 다녀도 괜찮은데 기왕 돈 낸 거 그런 행사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유치원 가방에 미혹됐듯, 이번에는 시장놀이에 미혹됐다. 바보 거미는 좀 참기로 했다.
다른 노래를 배워도 거미 노래는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유치원이 좋아지려다가 도돌이표로 도루묵이 됐다. 다행히 4월부터는 ‘시장에 가면’ 노래가 거미를 밀어냈다.
5월에는 1분기 생일파티를 했다. 두꺼운 도화지로 왕관을 만들어 쓴 생일 당사자들 뒤에 한복 입은 엄마들이 45도로 한쪽 어깨를 내밀고 섰다. 지금 보면 치열하게 촌스러운 그 사진을 위해 길석님은 어려운 반차를 냈다. 생일 파티를 끝으로 나는 유치원을 중퇴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온 할머니와 옛날 사진첩을 보다가 유치원 생일 파티 사진을 봤다. 이 사진으로 할머니의 사랑을 의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