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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28. 2021

에버랜드 튤립축제보다 좋은 곳

사랑의 모습

 꽃은 꽃집에서 봐야 제일 예쁘기 때문에 (자매품, 고양이는 인스타에서 제일 예쁘다) 절대 동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대신 밖에서 보는 건 늘 찬성이다.

   에버랜드 튤립축제가 일주일 남았다. 남편한테 칭얼댔더니 가자고는 하는데 4인가족의 입장료만 12만 원, 밥 한 끼 먹으면 5만 원, 주유, 간식 등등하면 금방 20만 원?

   어트랙션도, 남이 꾸민 꽃도 나만 좋아하는데 나 하나 좋자고 하루에 20만 원을 쓸 수는 없었다. 집 앞 카페에 앉아 커피 먹고 속 차렸다.

   집에 왔더니 남편이 용인 농촌체험관을 보여준다. 꽃밭을 잘 꾸며놨다. 국가 운영이라 입장료도 저렴하다. 고민할 거 없이 출발!

   나는 결혼기념일을 안, 아니 못 챙긴다. 전날까지 알아도 당일에 까먹는다. 남편은 꽃다발도 준비하지만 나는 치우기 귀찮으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예쁨보다 내 귀찮음 여부가 훨씬 중요하다.

   이리도 멋없는 마눌을 위해 그 두꺼운 손가락을 놀려 꽃밭을 찾아낸 남편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가는 길의 뻥 뚫린 고속도로는 내게 직진하는 남편의 사랑일지도. 물론 티 내기엔 어쩐지 등이 간지러워서 말은 안 했다. 대신 조수석의 나는 이미 공중 부양하듯 엉덩이가 붕붕 떠 있었다.

   내가 굳이 에버랜드를 가겠다 했으면 남편은 어떤 반론도 없이 그냥 갔을 거다. 가서도 비싸다고 내가 구시렁대면 그 또한 남편은 묵묵히 들었을 거다. 듣다가 어쩌면 간식 정도는 본인 용돈으로 사줬을 수도.

   기념일마다 반짝이는 박스를 주지 않아도, 성시경 발라드처럼 사랑을 속삭이지 않아도 에버랜드 튤립이든 농촌체험관 꽃밭이든 찾아주는 그 두꺼운 손가락이 진짜 사랑임을 이제 안다. 이후로 튤립축제의 광고판이 보이면 에버랜드와 농촌체험관 사이에서 사랑을 본 올해가 떠오를 것 같다. 사진으로만 봐도 에버랜드가 확실한 승자지만 농촌체험관 꽃밭이 내 눈에 더 사랑스럽다.

 추신 1.

용인 농촌체험관은 주말 및 공휴일 휴무였다. 체험관을 주중에 못 가는 내가 잘못 산 걸로. 공무원 만세!

추신 2.

지난주 일요일 아침에 남편이 말했다.
"내일이 결혼기념일인 거 알아?"

(어쩌면 알거라는 기대조차 이젠 없는 듯)

"어?...음... 사랑해..."




내일, 아코더 작가님은 ‘인간’ 과 ‘사람’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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