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서 소중한 동네 친구 vs 회사 친구
"뭐해?"
두 글자만 보내기 참 편한 동네 친구. 약속을 미리 잡지 않아도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할 때, 집에서 뒹굴기 지쳤을 때 연락하면 5분이면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는 그 동네가 참 좋았다. 우리는 별일 없는 주말이면 신촌에서 홍대까지 걸어서 마실을 다니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걸어가나 싶은데 수다 떨며 걸으면 한 바퀴 휘돌고 오기 길지 않은 산책길. 또 어떤 날에는 남산을 오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참 편안해졌던 것 같다. 그 산책길 속 시원했던 공기가 그립다.
퇴근하기 전에 왠지 그냥 집에 가기 싫은 날, 동네 친구들에게 번개를 친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후다닥 모여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들. 선약보다 더 설레는 급작스런 만남.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하나 둘 모여든다. 오랜만에 봐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했던 장난 또 치고. 놀리고 또 놀리는 것이 그렇게 재미나다. 술이 조금 알딸딸해도 괜찮다. 집이 거기서 그 기라 가는 길에 넣어주고 가면 되니까.
"오늘 한 잔?"
일이 힘들거나 사람이 힘들거나 술 생각이 나는 퇴근길엔 역시 회사 동료다. 회사 걱정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려면 쿵작이 잘 맞아야 하니까. 내가 왜 힘든지 내가 무슨 걱정이 있는지 가장 잘 아니까. 보통은 술을 빼놓을 수 없는 사이지만 근무 중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도 그대뿐이다. 힘든 미팅 후에 같이 내려가 라테 한 잔 하며 마음을 한 숨 돌리고 올 수 있도록 돕는 사이. 그대 덕분에 품 안에 사표가 그 자리를 지키고 나는 회사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힘들어도 함께 해주는 그대들 덕분에 이렇게 또 한 해가 가고, 나는 그만큼 성장했으리라. 평일에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붙어있는 그대들이라 주말에는 연락하지 않는 것이 국룰. 보통은 금요일 퇴근 후부터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가끔 주말에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월요일을 노려봐야 한다. 그래서 월요일에 그렇게 회식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동네가 재개발되며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 번 만나려면 큰 맘먹고 강을 건너야 한다. 그 시절 나의 서울은 걸어 다닐 만큼 좁았는데 지금은 어디를 가든 큰 마음먹고 한참을 가야 해서 너무나 멀다. 게다가 퇴근길은 아예 사라졌다. 일이 끝나면 1초면 육아의 현장으로 이어지는데 퇴근길의 수다도 한 잔도 사라져서 재택근무의 소중함만큼이나 많이 아쉽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대들이 내 삶에서 너무 작아지고 난 훌쩍 늙어있어서 잠시 깊이 우울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해야 추억이 생긴다. 매일 반복되는 삶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늙었다고 느껴지니까.
십몇 년 전에 계곡에서 비 맞으며 고기를 구워 먹던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듯이. 피곤한 일상이지만 그대들과 가끔 작은 일탈을 만들어보자. 훗날 오늘을 추억할 수 있도록.
내일, 음감 작가님은 '용인에버랜드' 와 '용인농촌체험관'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