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나는 책 한 권과 허리를 맞바꾸었다. 1년여 동안 원고 집필을 했고, 출간 일주일을 남겨둔 상태에 허리디스크가 터져버린 것이다.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 '사달났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공포가 엄습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야야야야....'
무릎관절이 아픈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내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 갑자기 재채기가 무방비로 터졌다. 복부와 허리로 힘이 들어가면서 우지끈, 번개가 내리꽂았다. 눈앞에 벼락 맞고 반으로 쩍 갈라지는 대추나무가 떠올랐다. 상하체가 두 동강이 나는 듯했다. 숨이 안 쉬어지고 눈물이 찔끔 났다.
'으. 한의원... 한의원..'
몸이 아프면 병원보다 한의원을 먼저 찾는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비상사태를 대비해 구비해놓은 '복대'를 허리에 둘러차고, 끄응 신음 소리를 내며 집 밖을 나섰다.
걸음마 떼듯 조심스레 한 발자국 내디뎠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 거 같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레 팔자걸음이 됐다. 마치 내 몸에 슬로모션 효과를 준 것처럼 나아갔다. 한의원에 가려면 신호등을 두 번 건너야 했다.
이제 겨우 반 왔는데 초록불이 5초 남았단다. 모두가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나 홀로 횡단보도를 그야말로 횡단하고 있었다. 국경을 넘는 일처럼 하염없이 느껴졌다. '이렇게 길었단 말이야?'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눈에 쌍심지를 켠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이 양반들아, 나도 빨리 건너고 싶다고'
인도에 발이 닿자마자 등 뒤로 버스가 휘갈긴 바람에 나는 휘청거렸다. 평소 두 배 시간이 걸려 한의원 건물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가는데 문이 닫히려고 한다. 고개를 빼꼼 내민 청년이 '복대'를 찬 나를 발견하고 황급히 문열림 버튼을 눌렀다. 느릿느릿 겨우 탑승했다. 청년은 층수를 공손히 물어보더니 버튼을 눌러줬다.
'이보게, 나는 허리가 아프지 손가락이 고장 난 게 아니라오.'
결국 신경외과에 입원하였고, 수술 빼고 온갖 치료를 한 끝에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 극한의 통증으로 할머니 체험을 한 기간은 단 이틀. 짧은 시간 참 많은 것을 느꼈다. '건강이 최고다', '안 아픈 것에 감사하다'라는 뻔한 깨우침을 제쳐두고도 말이다.
나는 할머니(노인)를 경험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삶에 무감했다. 운전을 할 때는 쓸 데 없이 긴 초록 신호등 때문에 짜증 난 적이 많았다. 아침마다 달리러 나가면 같은 트랙을 천천히 걷고 있는 어르신을 보고 '왜 달리지 않고 걸을까, 이왕 나온 김에 달리면 건강에 더 좋을 텐데'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나였다.
본의 아니게 치른 할머니 체험 덕에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나는 아주 잠깐 할머니 육체로 살아봤고, 할머니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됐다. 할머니가 살기에 세상은 너무나 급하고 참을성이 없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도와주니 억울했다. 늙으면 서럽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한 동안 울적했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보통 책을 읽으며 습득한다. <나는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를 읽으며 치매노인과 요양원 사람들의 생활을 알게 됐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비정규직 노인의 삶을 들여다봤고 분노하며 눈물 흘렸다. 하지만내 몸으로 통과한 '체험'은 그보다 강렬했다.
경험과 체험, 사전적 의미로는 거의 같다. 나는 할머니 체험을 통해 두 단어의 경계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됐다. 경험과 체험은 한 사람을 확장시킨다. 경험은 넓게. 체험은 깊고 독자적으로.
내일, 캐리브래드슈 작가님은 '동네친구'과 '회사친구'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