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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26. 2021

요가매트를 종용하다

천지창조

성경의 시작은 창세기고 창세기의 시작은 천지창조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6일 동안 하늘과 땅, 동식물을 만들고 일곱 째 날은 쉬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오만 번은 듣던 이야기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보면 하루키의 일상은 참 단순하다. 아침에 10킬로미터를 뛰고, 하루의 분량을 쓰고, 쉬고, 잔다. 잘 써지는 날이 있다고 해도 정해진 분량 이상 쓰지 않는단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잘 써지는 날이 있을 때 확 나가야지. 유비무환을 모르는 하루키다.

  

  다시 읽는 성경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천지창조가 이상했다. ‘창세기는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를 강조한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쫘란, 생기는. 말 한마디로 다 되면 하루에 끝내버릴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나눠서 6일 동안?


   다시 하루키 인터뷰. 그는 잘 써지든 아니든 매일 규칙적으로 정해진 분량을 쌓는 것이 오래 쓰는 방법이라고 했다. 한 번에 몰아 쓰기는 습관으로 장착되기 어렵고 습관이 되지 않으면 오래 쓸 수 없으니까. 천지창조를 할 때 하루에 끝내버리고 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일로 나눠서 규칙성을 준 건 신이 인간에게 가르치고 싶은 삶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하루키가 천지창조를 보며 본인의 삶을 일궜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규칙적인 뭔가를 생각했다. 많은 한국인의 새해 목표라는 어학공부와 운동이 튀어나온다. 어학은 학교 다닐 때 시험이 있어도 안 했으니 나를 못 믿겠다. 그러면 운동? 6년 내내 체력장 최하등급이?


   나에 대한 1프로의 기대를 갖고, 천지창조가 새롭게 다가오게 하는 신의 은총을 믿으며 일단 요가매트를 샀다. 이곳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선포 하노라! 이 땅을 밟을 때는 더 이상 엄마도 주부도 아니겠노라! 의 마음이었다. 마음과 상관없이 <애미야, 내가 몹시 심심하구나>를 다양한 통로로 표현하는 애들 때문에 플랭크 버티는 와중에서도 까꿍놀이를 했다. 그래도 매일 깔았다.


   점점 운동 시간이 늘었다. 6일을 채운 후 일곱째 날에 일부러 매트를 깔지 않았다. 나의 쉼이 당당하고 뿌듯했다. 하나님이 6일간 천지창조를 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했다는 그 마음이 진짜 마음으로 읽힌다.


   영화 <명량>, 드라마 <스카이 캐슬> 등의 음악을 맡았던 김태성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다. 하루 일과를 묻는 질문에 그는


   “새벽부터 곡 작업을 하고, 그럼 6-7시간쯤 일하는 거죠. 그러고 나서 밥 먹고 스탭 회의하고, 운동하고 자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게 전부냐고, 매일 그러냐고 물었더니.


   “가장 이상적인 스케줄입니다. 저대로 하고 싶은데 못하는 날도 있어요. 하루키처럼 이 생활이 루틴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요. 창작을 오래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하루키의 에세이를 추천해요.”


   이건 뭐지. 거장과 신의 하루는 통하는 것인가. 창조의 위대함은 규칙적으로 하고, 쉼을 분리하는,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그 지점에 있었다.


   신이 내게 깨달음을 주는구나. 꾸준히 하면서 쉴 때는 제대로 쉬라는. 만 번도 더 들었을 천지창조가 이렇게도 다가오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건 누구에게나 의미 있다.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인 매트 깔기도 연차가 쌓이니 버피 100회, 스쿼트 200회의 결과물이 나온다. 나온 들 몸짱 엄마 바디 프로필 사진에 비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0에서 시작하는 걸 생각한다면 몸짱보다는 스쿼트 200개가 더 확실하지 않은가.


   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확실한 일이 있다는 자체가 위로다. 내 안의 천지창조, 하루키, 김태성 음악감독을 부지런히 데려오는 중이다.




천_ 가지 좋은 말보다

지_ 혜의 말보다

창_ 조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조_ 용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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