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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27. 2021

오늘도 싸우는 아이들에게

선악과가 말하다

신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다.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단언하면서.


   이 후, 신은 잠든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 하와를 만든다. 얼마 후 뱀이 하와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어.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게 될 것이다 라고.”(창세기 3:2-4)


   응? 먹으면 죽는다고 했지, 만져서 죽는다는 말은 없었던 거 같은데. USB판을 확인해봤다.


   God told us not to eat the fruit of that tree or even touch it; if we do, we will die. 그것을 만지거나 먹으면 우린 정말 죽는댔어.


   이 앞에 ‘먹는다면 그 날 죽으리라’만 있었는데 얼마 안 되서 만져도 죽는단다. 고전중의 고전이라는 성경인데, 별로 길지도 않은 말의 전달이 정확하지 않다. 뭐지?


   아이들이 또 싸운다. 한명씩 불러서 얘기를 들었다. 7남 8녀도 아니고 고작 두명인데 둘의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뭘 기준으로 들어야 할까.


  뻥 치지 말라고. 내가 더 소리높여 애들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선악과를 읽으니 내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을 했는지 알겠다. ‘먹으면 죽으리라’의 간단한 말도 그새 말이 덧붙여지는데 고작 열살 남짓 아이들이 흥분해서 떠든 말이 어찌 정확히 전달될까.


    같은 글을 읽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확실한 물성이 있는 글이 그럴 진데 말은 말해 뭐해. 같은 말이라고 해도 당시의 눈빛과 말투가 얹어지면 또 여러 경우의 수가 생긴다. 이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하며 100프로 정확하게 말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인간은 선악과를 먹는다. 먹은 후의 아담 반응을 보라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그 과일을 주어서 내가 먹었습니다.”


   하와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할 때는 언제고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꼴이란. 게다가 그 여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게 하신 그 여자’라고 강조한다. 태초의 찌질이다. 좀 멋있게 ‘내가 먹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라고 할 수 없었을까.


  에덴동산에서 말을 덧붙이거나 책임 면피용 말을 하는 모습은 애들 싸움에 지친 내게 묘한 위로를 주었다. 낙원에 살아도 사람은 원래 그러는구나.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도, 너무 속상해하지도 말자는 식의 다짐 말이다.


   아이들의 싸움에서 내가 할 일은 잘 들어주고 "그랬쪄 그랬쪄 내 새뀌~" 하면서 엉덩이 토닥이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그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따지기 시작하면 무슨 소설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행여 그 시비를 가린들 누구 하나에게 이로움은 있을까.  


    선악과는 내게 ‘아이들이 전하는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자’로 읽힌다 정확한 말을 찾겠다고 윽박지르면 아이와 관계만 망가질 터. 말이 가는 길 말고 마음이 가는 길을 가고 싶다. 그 길을 알기 위해 오늘도 성경을 뒤적인다.




선_ 과 악을 구분하려는 뜻이 아니었다


악_ 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리 될 일은 없고


과_ 실을 덮어주며 내 모습을 돌아보는 것. 오늘 필요한 선악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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