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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02. 2021

수익률 800프로의 투자를 아십니까

아도니야 이야기

 개인이 나무를 키우는 땅을 정부에서 매입하면 땅값과 더불어 나무까지 보상해준다. 나무가 클수록 보상가도 크다.


    ‘에메랄드그린’이라는 나무가 있다. 묘목은 2천 원이다. 희귀종이라 보상기준은 없다. 만일 이 나무를 심은 땅을 정부에서 매입한다면? 보상감정 책임자는 신묘한 우연으로 이 땅의 주인이라면?

    '왕버들'이라는 나무도 있다. 묘목은 6만 원, 4년 후 4m가 되면 보상가는 48만 원이다. 4년 후에 정부가 이 땅을 매입하면 땅값 빼고도 나무 수익률만 800프로다. 놀랍게도(는 아니겠지만 일단은) 이 나무를 심은 땅주인은 위의 에메랄드그린 감정 책임자의 직장동료다. 모두 토지보상 대상지가 됐다.

   땅주인들은 회사 내부정보를 제멋대로 해석했다. 이름하여 ‘제멋대로력’이다. 이 ‘력’은 눈 앞의 팩트를 나의 능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 제멋대로력은 나름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B.C 970년경, 아도니야는 본인이 다윗을 잇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름 팩트를 기반으로 했다. 다윗을 모신 제사장 아비아달과 요압 장군이 그를 지지했다는 것.


    다윗 다음 왕은 솔로몬으로 이미 결정된 때였다.. 아도니야도 알고 있었지만 제멋대로력이 발동해서 여러 정황을 끼워 맞췄다.

   ‘아버지 다윗은 내 형 압살롬을 사랑했어. 형은 반란으로 죽긴 했지만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끝까지 압살롬 형을 살리려고 했잖아? 압살롬 동생인 내게 섭섭하게 하신 적도 없어. 그러니 나도 왕이 될 만 해’

   압살롬 이야기도, 다윗의 태도도 모두 팩트다. 하지만 팩트가 행동의 당위를 만들지는 않는다. 토지보상 내부정보가 팩트였고 팩트에 따라 움직인 저들의 행동이 당위가 없는 것처럼.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솔로몬 즉위 후에도 제멋대로력에 취했다가 결국 죽는다.




   나는 피아노를 오래 쳤다. 내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은 당연히 악기 하나쯤은 자유로이 다룰 줄 알았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시켰다. 너무너무 싫어했다. 사람이 다르니 악기도 다른가? 싶어서 바이올린을 시켜봤다. 더 싫어했다. 두 종류 악기에 학을 뗀 아이는 급기야 악기 자체를 싫어하는 지경이 됐다. 내 유전자라는 팩트를 근거로 제멋대로력을 발휘한 결과다.

   아도니야의 제멋대로력은 결국 자신을 겨눈 칼이 됐다. 나무 주인들의 제멋대로력은 몇 배의 징벌적 배상으로 돌아왔다. 나의 제멋대로력은 레슨비와 악기값을, 근본적으로는 악기에 대한 좋은 이미지까지 날려먹었다.

  팩트를 가려내는 눈도 중요하지만 가려냈다고 제멋대로력을 가동하면 안 된다는 것도 배운다. 나도 모르게 행하는 제멋대로력이 또 있을지 성경을 찬찬히 보며 생각한다. 이런 기준을 주는 책이 있다는 자체가 꾸준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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