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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15. 2021

이 사슴 같은 새끼

입다의 서원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짜증유발 캐릭터 사슴을 아는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나무꾼이 구했더니 사슴은 은혜 갚겠다며 나무꾼에게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숨기라 한다. 덕분에 선녀는 하늘로 못 가고 어쩔 수 없이 나무꾼의 아내가 된다.


엄한 은혜 갚기로 단박에 인생 꼬인 선녀를 보며 사사기 입다가 생각났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신께 서원한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사사기 11장 30-31절)

   전쟁에서 이기고 신에게 감사하고 싶으면 본인이 해야지 왜 영접하러 나온 사람을 통해 하는가. 정말 사슴 같은 놈이다.

   번제는 말 그대로 ‘태워서 드리는 제물’로 구약시대 동물 희생의식이다. 동물이 전쟁 승리를 영접 할리 없으니 여기선 사람을 태워서 감사 제물로 올린다는 말이다.


사람 번제물은 이스라엘 전통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관습이다. 그러면 설사 서원했다 해도 무를 방법이 충분히 있을 텐데 굳이 감행했다. 더군다나 영접하러 나온 사람이 본인 외동딸인데도 그렇다.

   입다의 딸은 아비에게 두 달의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친구들과 산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처지를 애도하고 함께 운다.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전통이 생겨 매년 나흘씩 온 이스라엘의 처녀들이 입다의 딸을 위해 애곡 한다.


 애도하면서 입다의 무책임한 서원도 돌아봤겠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던 시절의 수상함을 상기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겠지. 돌아보고 다짐하며 오늘을 반추하는 것, 역사의 존재 이유다.

   사슴 같은 아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할 그때는 애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애도하느라 그날만 되면 모든 이스라엘이 기억했다. 그 기억으로 점차 사슴 같은 새끼가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들처럼 더 애도해야겠다. 더 기억해야겠다. 4월이 지나가고 있다.

사_사로운 마음 없이 읽으려 해도
사_사건건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
기_존에도, 지금도 반복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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