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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12. 2021

일기와 에세이 사이(1)

<젊은 ADHD의 슬픔>을 읽고

브런치북 공모전 수상작 중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작품이 있다. ADHD를 겪는 작가가 본인의 이야기를 썼다. ADHD는 우리말로 풀면 ‘주의력 결핍장애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주작이라고 하기엔 ADHD 표현이 너무 생생해서, 설사 주작이라 해도 그 상상력과 자료조사에 충분히 경외심을 표할 만큼 잘 썼다(물론 주작은 아니다)


작가는 마지막 편에서 ‘자기와 대화하기’를 행복의 조건으로 꼽으면서 그 방법이 글을 쓰는 거라고 했다. 아마 그는 쓰면서 ADHD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찾은 것 같다. 읽으면서 이 작가는 자기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만일 자기애가 아니고 자아도취로 갔다면 이런 글은 나오지 못했을 거다. 사전적 의미로 자아도취란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일이고 자기애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에서 생기는 자기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ADHD와 함께 살아야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글을 쓰지 않았을까. 단순히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것만으로는 열일곱 편이나 되는 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황홀하게 빠져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긴 있다. 그중에선 이 브런치북 저자차럼 아픔을 솔직하게 쓰기도 한다. 그럼 아픔을 솔직하게 쓰면 모두 작품이 될까?


자기 자신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사람은 자신의 아픔도 특별하고 거대하게 본다. 아픔을 바라보기 때문에 본인도 다른 사람도 자아도취라고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솔직함에 기대어 본인의 아픔에 본인이 울면서 쓴다. 에세이가 되지 못한 일기는 바로 이 순간에 나온다.

     

나의 아픔은 타자화해서 바라보고 남의 아픔은 그 안에서 같이 울어야 독자와 공감하는 글이 나온다. 나의 아픔에 내가 울어버리면 읽는 사람은 ‘어쩌라고...’가 되어버린다. 적어도 독자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지양할 일이다.


나에게 매몰되면 일기, 매몰 전에 빠져나와 방향을 다시 잡으면 에세이가 된다. 물론 매몰과 솔직함 사이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누구나 감수할 일이다.


자기애와 자기도취는 에세이와 일기를 가르는 선이 된다. 자기애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 글을 쓰면 적어도 일기와 에세이 사이에서 좀 더 객관적인 고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솔직함은 일기의 원동력이지만 에세이에서는 그리 좋은 처방전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솔직함은 너무 날것이어서 징그럽고 보기 싫다. 자기애와 자아도취 사이에서 솔직함도 그저 하나의 수단이고 싶다. 일기 이상의 글을 쓰고 싶다면 자아도취에 빠져 솔직함을 빌미로 랜선 휴지조각을 만들지 않기를.


맞다, 이 모든 건 나를 향하는 말이다. 나부터 자기애와 자아도취를 구분해서 쓰기를. 진짜로.




내일, 아코더 작가님은 ‘오전반차’ 와 ‘오후반차’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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