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부에서 새댁으로
다소 진중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식장에 들어선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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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신님~하고 공주 대하듯 귀한 대접을 평생 처음 받아본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언제 또 이런 대접을 받아보나 하고 더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결혼을 준비하며 그 중심은 오롯이 예비신부이다. 드레스도 식장도 촬영 콘셉트도 거의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한다. 평생 한 번뿐이니까라는 마법 같은 주문은 모든 것을 나의 경제력보다 조금 더 높게 선택하게 만든다. 앞으로 할 일은 결혼식날 조금이라도 더 이뻐 보이기 위해 열심히 나를 가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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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신부라는 부캐는 돈이 많다. 평생 이렇게 큰돈을 만져본 것도 처음이고 써보는 것도 처음이다. 천 원이라도 더 아끼려고 애쓰던 내가 돈의 단위가 달라지니 돈 같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웨딩시장이 눈먼 돈의 시장이라 했던가. 그야말로 매일매일 펑펑 쓰고 있다. 이때 아니면 평생 못 쓴다는 친구들의 말에 힘입어 오늘도 열심히 쇼핑에 매진한다. 신혼살림은 왜 사도사도 끝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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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이 결혼이다. 언제 결혼하냐는 걱정 반 잔소리에서도 이제 해방이다.
D+20
새롭게 얻은 새댁이라는 부캐는 '결혼 언제 하니' 퀘스트를 깬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새로운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그 이름하야 '애는 언제 가질 거니'퀘스트. 인생은 항상 미션 뒤에 미션이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D+50
새댁이 가꿔야 할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신랑의 얼굴이다. 퇴근 후 신나는 야식 루틴으로 안 찌고 싶어도 열심히 뿔어가고 있지만, 신랑 얼굴이 얼마나 통통해졌느냐가 남자가 결혼을 잘했느냐의 성적표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딱히 더 잘해 먹이는 것은 없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쨋든 내가 다 뺏어 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
D+100
결혼식을 기점으로 예비신부는 돈 없는 새댁이 된다. 할부가 찍힌 카드고지서를 보며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아끼고 저축해야 할 때라고 다짐한다. 일단은 전세자금 대출부터 갚아나가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노후를 위해 돈도 모아야 하는데 왜 둘이 모아도 혼자 모으던 것보다 더 늘지 않는 느낌이지? 살면서 보니 결혼 준비하며 참 쓸데없는 곳에 돈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 거 안 했어도 되는데. 그렇게 돈 안 들여도 됐는데. 웨딩앨범은 정말 신혼초 집들이에 한두 번 보고 먼지가 소복이 쌓이는구나. 하지만 후회는 금물. 그 돈 덕에 예신님~하고 공주대접받고 포샵 힘껏 받아 예쁜 사진 남겼으면 되었다. 언제 그런 대접받아보겠는가. 이제부터 열심히 아껴서 모으면 되지!
결혼은 어떻게 보면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일상의 곳곳을 많이 바꾸어 놓는다. 달라진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지, 불행하게 만들지는 그 또한 오롯이 나에게 달려있다.
내일, 음감 작가님은 '자기애' 와 '자아도취'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