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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y 10. 2021

친구는 줄고 지인은 늘었다

흐르는 관계


나의 귀엽고 찬란한 역사를 함께 했던 친구들, 다 어디로 갔을까.


하교 후 수화기에 불이 나도록 수다를 떨던 동네 친구, 수능 시험장에서 서로 손 붙잡고 기도했던 고딩 친구, 버스를 타고 동대문 '거평 프레야', '두타'에 함께 갔던 쇼핑 친구, 먹부림으로 똘똘 뭉쳤던 대학 친구, 누가 누가 더 연애 못하나 서로의 흑역사를 대결했던 알바 친구, 인디밴드를 보겠다고 뻔질나게 홍대 클럽을 함께 드나들던 유흥 친구, 같이 밤을 새우며 키보드 앞에서 피를 흘리던 작가 친구...


그들과 멀어진 데에는 대개 인생 중대사가 끼어있었다. 결혼. 그나마 아이가 없을 때에는 1년에 두어 번이라도 다. 출산을 하고 나면 그마저도 힘들었다. '나는 정말로 안 그런다, 왜 아이 낳고 연락 끊기는지 이해가 안 간다'라고 호언장담했던 친구마저 소식이 끊겼다. 나는 아직 모르는 육아라는 영역에 친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숨어있는 게 분명하다.


두 번째는 지역적으로 멀어지면서다. 신혼집, 남편 직장 때문에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역시 주로 결혼이 계기다.  역시 30년 넘게 살던 서울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보통은 몸이 멀어지면서 마음도 멀어졌다. 생일이면 형식적인 연락을 하고 기프티콘 선물을 보냈지만, 그마저도 어느 한 사람이 잊으면 관계가 끝나버렸다. 마치 누가 먼저 연락을 먼저 끊는지 눈치게임을 하는 것처럼. 상실은 언제나 우울한 불편감을 동반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나 같은 경우 친구는 준 반면 지인은 늘었다. 모임이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 그 사람이 건너 건너 소개한 사람, 온라인 인맥 등 '친구'라고 하기에는 무겁지만 친구보다 더 연락을 자주 주고받고 만나는 사람들.


어릴 때 인간관계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동갑내기, 혹은 한두 살 위아래였다면 지금은 훨씬 다채로워졌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니 서울 경기 외에도 전국구에 40-50대 지인이 생겼다. 이 분들을 내 마음대로 친구라고 불러도 될까. 나는 그러고 싶지만 상대방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지인은 이럴 때 편리한 용어이다. 지인은 경쾌하다.


친구에게 연락이 오랫동안 안 오면 서운하지만, 지인에게 갑자기 연락이 오면 반갑다. 지인이라고 생각하면 서운할 일도 고마운 마음으로 바뀐다. 반면, 친구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똑같은 상황이라도 섭섭한 게 많아진다.


'친구라면 ~~ 해야 하는 거 아냐?'
'친구인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뭐든지 다 받아주는 연인에게 생떼를 부리듯. 하지만 친구는 연인이 아니다. 연인도 지속되는 투정에는 지치고 떠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내가 친구라고 믿어왔던 수많은 관계가 실은 지인보다 못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저 타이밍이 맞아, 같은 시공간을 넘어갔던 건 아닐지. 내가 지인에게 하는 만큼 그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을 쏟았던가?


몸은 멀어도 내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결이 비슷한 사람들, 하루가 머다 하고 소통하고 서로 응원하는 느슨하지만 꾸준한 지인들. 나는 확실히 이들과 접촉 빈도가 높고 그만큼 마음을 쏟는다. 친구가 이들보다 나를 더 잘 알까. 그렇지 않다 쪽에 무게를 싣는다.


이제는 누가 친구고 지인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지인이 됐고 지인은 친구가 됐다.


그런데, 친구면 어떻고 지인이면 어떤가.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할 필요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서로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꾸준한 응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내일, 캐리브래드슈 작가님은 '예비신부'와 '새댁'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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