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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19. 2021

합리적입니까 합리화했습니까

아합, 이사벨, 코로나 백신

합리화와 합리적. 사전으로 보면 첫 번째 의미는 같다.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합리적), 합당하게 함(합리화). 그런데 왜 두 단어가 멀게만 느껴질까.      


구약성서에서 나쁜 쪽으로 원탑인 왕과 왕비가 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사벨이다. 그들 이야기에서 합리화와 합리적의 간극을 본다.      


아합은 나봇이 가진 포도원이 탐이 나서 포도원을 자기에게 팔라고 말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야훼법이 최상위 법이었고 야훼법에 따라 조상이 물려준 땅은 매매를 할 수 없었다. 그저 본인 소유일 때 잘 관리하다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하는 공공재였다. 야훼법을 따르는 나봇은 당연히 거절했고 아합도 더 이상 말 못 붙인 채 집에 와서 머리 싸매고 눕는다.      


남편의 고민을 들은 이사벨은 일을 꾸민다. 나봇이 야훼와 왕을 모독했다는 대본을 쓰고 사람들을 매수해서 모든 상황을 합리화시킨다. 나봇은 천하의 나쁜 놈이기에 돌로 쳐 죽이고 야훼법에 상관없이 그의 재산도 몰수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사벨의 합리화 작업에 사람들은 정말 나봇을 죽였고 포도원은 아합의 차지가 된다.  

    

이사벨은 본인이 억지로 합리화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합리적으로 대본을 잘 썼다고 생각했겠지. 아합도 동조했으니 그런 이사벨을 말리지 않았겠고. 그들의 대본이 합리적이라는 착각은 이 부부를 합리화시켰다.  




요새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코로나 백신이다. 미국이 백신 수출을 늘릴 것인가 아니면 특허권을 풀어서 다른 데에서도 생산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두고 미국과 EU는 서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허권을 풀자고 했던 EU는 백신 재료를 190여 군데에서 공수해야 하는데 특허권을 풀면 오히려 가짜 재료가 유통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 미국의 완제품 수출량을 늘려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개인을 넘어서는 정책은 어느 쪽이 진짜 합리적이고 누가 합리화시키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합과 이사벨은 훗날 합리화에 대한 벌을 받았지만 현재 정책에서의 합리적과 합리화는 시간이 지나야 확인되는 부분도 있다. 정책에 삶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그저 가장 합리적인 결과이길 바랄 뿐이다.     


합리적이든, 합리화든 둘 다 사전의 첫 번째 의미로만 작용했으면 좋겠다. 이치에 합당하게 하는 것, 그 이치는 되도록 특정의 이익을 넘어서는 선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 그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공통 의무로 당연히 생각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내일, 아코더 작가님은 ‘우쿨렐레’ 와 ‘통기타’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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