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이 약하지 않을 때

왼쪽의 서사

by 음감

나는 극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잡이가 월등하게 많은 한국사회에서 굳이 극까지 붙이는 이유는 왼손은 제대로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몸 전체도 그렇다. 요가를 하다 보면 왼팔이나 왼다리로 버텨야 하는 모든 동작에서 평소엔 못 보던 연약함이 폭발한다. 어찌나 픽픽 잘도 쓰러지는지. 달리기를 하다가도 무릎이 아프면 어김없이 왼쪽이었다. 사십 대에 온 오십견도 왼쪽 어깨를 쳤다.


오른쪽은 어깨도 무릎도 아픈 적 없다. 요가에서도 오른쪽 버티기만 잘 되면 요가 강사들은 원래 그렇다고. 완벽하게 좌우 일치하는 사람은 없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저 꾸준한 운동으로 양쪽의 균형을 맞춰 가면 된다고 했다. 오른쪽은 늘 강하고 왼쪽은 늘 약하다가 절대전제였다.


골프 레슨 5회 차쯤 됐을까, 강사가 말했다.


골프는 다 왼쪽이에요.
왼팔로 치고
왼쪽 엉덩이가 제일 큰 역할을 합니다.
오른쪽은 그냥
거드는 것뿐이에요.


낯설었다. 왼쪽이 이렇게 강조되는 뭔가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었나? 왼쪽으로 다 해야 한다니. 아직 아는 게 없어서 뭘 부담스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부담스러웠다. 굳이 돈 들여 레슨까지 받는 중인데 극왼을 요구하는 운동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까.


약한 것들은 매일 약하란 법은 없었다. 골프에서 쓰는 왼쪽은 그리 비장하지 않았다. 그저 왼팔을 쭉 뻗어주고 스윙할 때 왼쪽 엉덩이를 내려주는 게 주요 임무였다. 이 정도만 하는데 왼쪽의 운동이라고?


왼쪽의 운동이라고 하는 건 상대적으로 오른쪽에 힘을 빼야 하는 일이었다. 스윙의 마지막에서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면 몸이 끝까지 안 돌아가서 그만큼 스피드가 떨어졌다. 왼발이 잘 버텨주는 상태에서 오른발은 그저 방해 안 될 만큼 가볍게 돌려줘야 한다고. 설명만으로는 참 상냥한데 내 몸은 안 상냥했다. 오른발은 “내가 제일 중요한데 왜 힘을 빼라고 해!” 하면서 상냥은커녕 극 뻣뻣으로 버텼다.


강함의 약함이 보였다. 튼튼했던 오른쪽 다리의 힘이 도통 빠지지 않았다. 요가에서, 달리기에서 그렇게 효자였던 오른 다리 최초의 배신이었다.


반면에 왼쪽은 대단한 균형감각이나 근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생긴 그대로, 구부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지 말고 자연스레 있으라고 하는 말이 반가웠다.


이 긴 채로 저 작은 공을 맞춰야 하는, 운동 같지도 않은 이 운동을 왜 남편이 추천하는지 그전까지 몰랐으나 왼쪽의 역할을 이해하니 뭔가 골프와 친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골프는 뭘 하나 이해했다고 해서 그게 쭉 유지되지 않는단다. 하지만 약한 쪽을 약하게 대하지 않는 그 기본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왼쪽 어깨가 아파서, 왼쪽 무릎이 아파서 되도록 그쪽을 안 쓰려고 몸을 사렸고 요가를 할 때만 마지못해 스트레칭을 했었다. 사린다고 안 써버리면 더 굳어버린다는 말이 겁나서 억지로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골프가 왼쪽을 강조하는데도 강함을 강조하지 않아서 나의 왼쪽을 좀 예뻐해 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요가에서 오른쪽이 끝나고 유(튜브)강사가 “반대쪽도 진행할게요.”라는 말을 하면 화면을 꺼버리고 싶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았다. '얘의 약함을 내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보랴'의 마음이라고 할까.

골프는 멘탈 스포츠라고 했다. 생각할 게 많고 필드에 나가면 미묘한 신경전으로 스코어의 차이가 생겨서 그렇다고 했다. 골프 3주차 극초보에게 멘탈스포츠란 다른 의미가 됐다. 약함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강한 것을 마냥 좋다고 하지 않는 마음, 그 자리에 원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강함이 될 수 있는 이유 말이다.


골프 구력이 더 쌓여서 보편적으로 말하는 멘탈 스포츠에 멘탈이 나갈 때, 골프 3주차의 이 멘탈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복잡한 이론 대신, 미묘한 신경전 대신 본질에 집중하는 마음, 어쩌면 골프 말고 모든 일에 필요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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