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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un 15. 2021

성경으로 한글을 뗀 아이

성경 읽기의 시작

할머니는 맨날 성경을 손으로 짚어가며 중얼중얼 읽었다. 유치원도 안 다니고 할머니랑 종일 지내는 나는 그 옆에서 구경하다가 한글을 깨쳤다.

어른되면 다들 그리 성경을 읽는 줄 알았다. 웬걸. 모태신앙의 '못해'는 혼자 성경 읽기를 못한다는 뜻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읽어도 읽지 않은 채 읽을수록 멀어졌다. 할머니는 어떻게 읽었을까.

엄마가 됐다. 애를 잘 키워보겠다고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으나 책대로 '못해'라는 자괴감만 남았다. 몇 년 동안 모은 육아서를 다 버렸다. 집에 남은 어른 책은 성경밖에 없었다.

할머니처럼 다시 성경을 읽었다. 여전히 어려웠지만 육아서의 자괴감보다는 나았다. 어려우면 건너뛰고 되는데만 읽었다.

할머니가 왜 종일 읽었는지 그제야 알 거 같았다. 읽기 시간을 어느 정도 채우니 성경이 일상의 나를 돕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 보이던 이야기가 보여서 천지창조가 운동을 하게 했고, 알던 이야기가 새롭게 보여서 선악과가 나의 평온을 지켜줬다. 할머니의 성경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도 나도 신학을 공부한 적은 없으니 할머니를, 나를 도운 성경이 신학의 깊이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도움이고 위로였던 순간들을 기록했다. 예전의 나처럼 혼자서는 도저히 성경 읽기가 안 되는 사람에게, 혹은 일상과 밀접한 성경을 찾는 사람에게 이 글이 닿았으면 좋겠다. 성경으로 한글을 깨친 아이는 이제 일상을 성경으로 깨치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별이 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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