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쌤이 공을 가져왔다. 내 팔 사이에 끼워보더니 바람을 빼서 좀 작게 만들었다.
"오늘은 이거 팔 사이에 넣고 합니다. 공 안 떨어뜨리려면 자연히 두 팔 간격이 유지돼요."
쌤이 원하는 간격만큼 맞췄기에 백스윙이 정확하게 나왔다(라고 쌤이 말했다. 나는 모르겠다) 백스윙하는데 쌤이 외친다. "회원님, 거기서 스타아압. 고개 돌려서 거울 봐요. 거울!!"
봤으나 뭘 보라는지 모르겠다. 부스스한 머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저 아줌마요?라고 묻지 못했다. 쌤이 푸핫 웃는다.
"팔 때문에 공을 끼웠으니 팔을 봐야지 왜 정지화면이 되십니까. 오른팔이 쟁반을 받쳐 든 듯한 이 모양이요. 이 간격과 각도 느낌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하아, 뭐만 하면 맨날 이 느낌 기억하래... 그거 배울라고 돈을 내고 있기는 하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우리 집에 필요한 거네요?
거리와 쟁반, 골프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애들이 매일 학교 갈 때, 아이들이 올 즈음이면 밖에 있다가도 나는 부리나케 들어와 과일을 깎고 핫케이크를 구웠다. 아침에 기분 좋게 나가면 그게 이뻐서, 싸우고 나가면 그게 미안해서 늘 뭔가를 준비했다.
쌤이 기억하라는 오른팔의 쟁반 받쳐 든 느낌, 고급 레스토랑의 숙련된 웨이터가 머리 위로 받쳐 올린 그 각도.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했던 나도 (그 각도로 쟁반을 들고 가진 않았지만) 마음가짐만은 레스토랑의 치프웨이터였다.
이 각도는 왼팔과 정확한 거리두기에서만 가능했다. 선생님이 맞춰준 공만큼의 크기, 거기에서만 됐다. 애들과의 정확한 거리두기는 주 5일 등교다. 주 2일 등교로 바뀐 후 간식 준비하면서 치프웨이터 각도가 내게 절대 안 나오는 거 보면 말이다.
1년 반 째 제일 자주 듣는 말, 거리두기. 그 덕에 아이와의 거리두기는 요원해졌다. 아이와 거리두기가 안 되니 어찌나 찌그럭대는지. 골프도 팔 거리두기가 안 되면 어찌나 찌그럭대는지. 땅을 치거나 헛스윙을 한다.
거리두기가 아이하고만 필요할까. 사람에 따라 필요한 거리가 다르긴 하겠지만 일정 거리 유지가 필요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남의 삶에 훅 들어가 붙어있다가 바닥만 치는, 치다가 지하까지 파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손과 팔이 너무 아파서 쌤한테 물어보니 초보의 불필요한 힘 때문이기도 하고 땅볼 칠 때 진동이 손에 무리가 돼서 그렇다고 했다. 실제로 멀리 나가는 공일수록 치는 순간 가볍다. 그 가벼움이 내겐 몹시 뜨문뜨문 오기에 손이 이리 아픈 거란다.
관계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기 전에, 골프에서 땅볼을 그만치기 위해 거리두기를 새기려고 한다. 서로 대접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골프공을 멀리 보내기 위해 거리를 유지해야지. 애들이 할 수 없으니 결국 나의 마음가짐이 먼저겠다.
골프가 골프를 넘어 관계를 가르치는 이런 순간이 좋아서 손을 주무르며 또 연습장에 간다. 부디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되는 날이 골프에서도, 일상에서도 오기를.
ps1. 레슨 끝나고 연습할 동안 이 공을 목에 걸고 하랬다. 뭔가 애들 장난 같아서 웃겨서 찍어봄. 완전 짜리몽땅으로 나오는군.
ps2. 40분 공 끼고 하다가 공 빼고 할 때 비거리 최고 기록 나옴!!!(내가 이래 놓고 좋아 죽을 때 쌤은 내 옆칸에서 240미터 나옴. 뤼스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