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걱정은 걱정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가상세계다. "노후자금은 어쩌지? 이사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이 가방을 들고나가면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가방을 다시 사려면 돈이..."
반면 돈문제는 통장에서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다. "이번 달 월세 내야 하는데 통장 잔고가 바닥이야." 식의.
여기서는 우리를 좀 더 오래 잡고 있는 돈걱정을 이야기해 보자.
돈걱정은 우리가 돈을 돈 이상으로 정의하면서 생긴다. 누군가에게 돈은 사회적 명함, 인간관계, 도덕적 우월감 혹은 복수심, 자괴감 등이 된다. 사람에 따라 수많은 명찰을 달고 있는 돈, 명찰의 종류와 숫자에 따라 걱정이 비현실적으로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한다. 돈에 붙은 명찰이 많아질수록 개인의 심리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숙제도 많아진다.
숙제를 늘리지 않으면서 돈에 끌려다니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마다 돈에 부여한 명찰이 다르기에 완벽한 답은 아니겠지만 꽤 그럴듯한 답을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준다.
그는 돈을 삶의 구성요소로 본다. 돈은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괜찮은 다른 요소와 잘 결합했을 때만 구성 요소가 된다. 그러니 돈 자체보다 결합이 더 중요하다고 제인 오스틴은 작품으로 말한다.
미스터 러시워스는그의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부자이지만 결혼생활에 완벽하게 실패한다.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 커플은 소설 속 인물들 중 가장 적게 벌지만 가장 만족한 일상을 엮는다. 같은 소설의 윌러비는 돈이 많지만 관리를 못해서 결국 부채 해결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오만과 편견>의 루카스와 콜린스 역시 부유하지만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
삶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돈을 받아들여서 다른 요소들 ㅡ 이를테면 이해, 포용, 건강한 논쟁, 신체적 건강, 가족의 화합, 현명한 경제관념 등 ㅡ 과 합을 잘 맞출 수 있고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면 제인 오스틴 기준에서 가장 이상적이다.
제인 오스틴 시대와 지금 시대는 다르다고. 그때보다 지금은 돈으로 해결되는 게 훨씬 많다고. 너그러운 인격은 통장 잔고에서 나오는 거 모르냐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 역시 내 통장 0의 개수에 따라 아이들에게 나가는 목소리 높낮이가 달라지는 사람이니까.
한편으로는 다 가진 것 같은 부자들의 복잡한 가정사나 자살소식을 들으면 그들 돈에 붙은 명찰은 뭐였나, 내가 꿈꾸는 돈은 판타지인가 생각도 든다.
제인 오스틴과 다른 시대라고 해서 그가 보여준 돈의 기준을 무시할 것인가. 평균 기준보다 돈이 훨씬 많은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돈이 전부는 아니야! 하며 정신승리할 것인가. 선택이 무엇이든 간에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이상 나도 당신도 내일은 또 돈 걱정을 하겠지.
제인 오스틴과 21세기 부자들 사이에서 나의 중심을 찾아보려 한다. 적어도 돈걱정이 돈문제로 귀결되지 않게 공부로 준비하는 자세, 행여 준비 못하고 뒤통수 맞아도 꾸역꾸역 일어나는 자세, 돈벼락을 맞아도 뒤통수를 맞아도 인생의 파편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별나게 기쁘지도, 별나게 슬프지도 않게 지나는 자세, 그런 걸 해보려 한다.
돈걱정과 돈문제,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함께 할 테지만 기왕이면 얘네도 나를 키우는 요소가 되기를 바란다.
*참고도서 : 인생학교_돈
내일, 아코더 작가님은 ‘비혼녀’ 와 ‘노처녀’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