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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an 09. 2020

조금 기다려줘 나를.

아직 내겐 너무나 가슴 벅찬 일인걸. 

*어쩌다 보니 옛 노래 시리즈로 가네요. 이건 중간 부분인데... 혹시 아실까요? ㅎㅎ


한때 공동육아의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부모가 할 일이 많지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면(보내면) 그 안에서 만난 아이들이 평생 친구가 된다고 한다. 얼핏 듣기에 매력적이었다. 


의문이 생겼다. 한 반에 적어도 7명은 됐겠지? 그중에서 평생 친구 2명이 생겼다... 확률로 보면 나쁘진 않지만 그 두 명이 생기기 전에 7명과의 상호작용은 계속 있었을 거다. 그것도 부모와 함께! 그럼 후기로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걸 다 겪은 후에 두 명으로 추려진 거다. 그 <수많은> 과정을 상상하는 걸로 이미 지친다. 


아직 원에 등록하지 않았던 어린 두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만 그거 못해.
니들이 평생 친구 찾기 전에
엄마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너네 팔자엔
공동육아가 없는 거야.
그냥 엄마랑 독박 육아 하자.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넋두리인 듯, 하소연인 듯 그냥 말했다. 아이들은 물론 전혀 못 알아들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독박 육아지만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순간은 몇 달에 한 번씩 오긴 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몸은 고되지만 나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이건 나중에 한 챕터로 다시 써봐야지. 





과하게? 노선이 정확하다 보니 작은 아이가 7살, 큰 아이가 10살이 되도록 주변에 내 친구는 없었다. 오래된 친구 아닌 이상 대부분 아이 친구의 엄마로 만났다가 그중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은 거 같던데 그 시도 자체를 안 했으니 안 그래도 좁은 인간관계는 거의 가시나무 수준이 되고 있었다. 워낙 혼자 놀기의 달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외로움을 잊고자 저 어마어마한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랬다) 에너지를 쓸 여력까진 없었다. 그냥 외로움은 내 친구려니 하고 가야 했다.




눈썹 언니들은 내 가시나무에도 잎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대체 이 언니들은 날 언제 봤다고 믿을 수 없는 신뢰를 계속 던져줬다. 


행여 내 활동을 못했으면, 그것도 내가 게을러서 못한 건데 누가 봐도 못할 법한 이유들을 알아서 만들어주면서 그러니 괜찮다고.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된다고 토닥여줬다. 실은 그거 아니라는 거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데 말이다. 이게 부끄럽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다음날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 어디 가서 말하기도 뻘쭘한 삽질 같은 일, 그런데 나는 해보고 싶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말하면 이미 다 이루어진 것처럼 손뼉 쳐주는 바람에 신이 나서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정연 is 뭔들"이었다. (정연은 계룡산 시절을 눈썹 방에서 시작한 언니로 그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에 is 뭔들 로 응원을 보냈다)


아, 이게 연대구나. 그리고 이걸 내 아이들에게, 내 남편에게 해 줄 수 있으면 정말 둘도 없는 좋은 엄마, 아내가 되겠구나 싶었다. 지지와 신뢰, 이 간단한 단어의 실전 편을 이렇게 깨달았다. 하지만 깨닫는다고 실천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종종 헐크력을 내뿜는 엄마다. 그래도 방향을 잡았음에 위로받는다.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친해졌을 때는 누구 때문에(남편 때문에? 직장상사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다고 말하면 그 직장상사는 몇 분 만에 당장 극형에 처해도 전혀 이상할 거 없는 사람으로 둔갑했고 남편은... (음, 남의 집 남편을 그렇게 죽일 놈 만들 일은 또 아니라서) 그 와중에 또 좋은 점을 귀신같이 찾아내 전날의 만행을 상쇄했다. 


내가 나다울 수 있게 조금 기다려 준 눈썹 언니들 덕에 내가 모르는 나를 또 만날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건 몰랐던 내 모습까지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너무 칭찬을 받아서 이게 자만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린 자만심을 갖기엔 밖에서 이미 너무 많이 깨져왔다. 그러니 이 손바닥만 한 채팅창에서 자만감으로 충전한다 해도 큰 무리는 없을게다.


조금 기다려 줘 나를,  
아직 내겐 너무나
가슴 벅찬 일인걸.
다시 뭔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눈썹 언니들과 이 랜선 공간은 그야말로 가슴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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