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Jun 23. 2021

공동 매거진이 끝났다

성급 vs 신속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신속하다는 ‘매우 날쌔고 빠르다’이고 성급하다는 ‘성질이 급하다’이다. 신속하다의 한자는 빠를 신, 빠를 속으로 빠름이 두 개나 붙어있다. 성급하다는 사전 풀이 그대로 성질 성, 급할 급으로 구성된다. 사람들은 신속함으로 성급해지기도 하고 성급함으로 신속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 먼저일까? 어느 쪽이 나을까?      




“너 마감 필요하댔지? 여기 지원해 봐.”     


3개월 전, 아는 언니가 공동 매거진 작가 모집 링크를 보내줬다. 글밥님의 ‘선 긋는 이야기’였다. 계속 쓰기 위해 작은 강제라도 필요했던 나는 신속하게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일요일을 제외한 엿새 동안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요일별로 글을 쓰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성급하게 ‘신청해요~’를 써서 보내려다가 잠깐 멈췄다. 나의 성급으로 망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모집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제야 보였다. 신청을 위한 간단한 룰이 있었다. 신속하게 읽고 룰에 맞춰 DM을 보냈다. 글밥님의 답장이 신속하게 왔다. 합격이다. 오예~     


이제 3개월 동안 주 1회 선 긋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어떤 단어들로 선 그을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공동 매거진이니 민폐 끼치지 않게 잘 쓰고 싶었다. 신속하게 써놓고 느긋하게 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속하게 깨달았다. 내 머리는 소재를 달랑 두 개만 던져주고 성급하게 문을 닫아버렸다는 것을. 내 깜냥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참여 결정을 한 내 탓이었다.      


한숨 푹푹 쉬며 소재를 찾았다. 찾는다 해도 글로 풀어 쓰려하면 절반은 어김없이 막혀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한국말이 이리도 어려웠던가. 나는 왜 성급하게 손을 번쩍 들어서 사서 고생을 하는가. 기왕 성급하려면 꾸준히(?) 성급해서 그냥 신청 룰을 어겨버릴 걸... 식의 자책도 했다.      


그랬던 3개월이 끝나고 이제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다. 3개월 동안 성급함의 벌을 넘치게 받긴 했지만 벌 받는 중에 보는 눈도 조금은 컸다고 믿고 싶다. 다섯 번째를 지나면서는 성급히 찾은 소재라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려냈으니 말이다. 소재 찾는 눈이 생긴 건지, 소재를 풀어내는 힘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생겼으니 감사히 여기련다. 성급이든 신속이든 마감 시간 내에 신청해버린 나를 칭찬한다.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신속함으로 성급해질까? 성급함으로 신속해질까? 둘 중 나은 쪽이 있을까? 선 긋는 이야기 공동 매거진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기회가 있을 때 성급이든 신속이든 재빨리 행동해야 하는 건 맞다. 일단 움직여서 기회를 잡았으면 순서도, 우열도 가릴 수 없다. 성급과 신속으로 만든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드는 내 책임만 남을 뿐이다.      


이제 내게 마감은 없다. 아니, 마감이 없다고 성급하게 단정 짓지 말고 이제부터 스스로의 마감을 신속하게 만들어보려 한다. 찾을 수 없던 선을 기어이 찾아내서 선을 그었던 12주를 근거로 내가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봐야겠다. 신속하게 찾을 수 있기를.




내일, 아코더 작가님은 '여행'과 '출장'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인이 되고 싶은 직장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