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Jul 07. 2021

혈압이 40일 때 생기는 좋은 일

열두 시간은 기본 아닌가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첫 번째 토요일, 달콤한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남편이 깨운다.      


“일어나 봐요. 괜찮아요? 내 말 들려요?”     


잠이 안 깬 나는 눈도 안 뜨고 대답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눈 뜨고 나 좀 봐요.”     


오홍, 이것이 말로만 듣던 깨 쏟아지는 신혼? 그대가 옆에 있어도 그대가 보고 싶다, 뭐 그런 건가? 부스스 눈을 뜨고 남편을 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오히려 내가 잠이 확 깼다. “헉,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침 열 시가 넘었고 잠든 지 열 시간이 넘었는데 내가 뒤척임도 없더란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숨도 안 쉬더란다. 그래서 황급히 깨웠다고. 자긴 순간 너무 놀랐는데 뭐 그리 태연하게 일어나냐고 타박이다.     




나는 혈압이 낮다. 잠들면 혈압이 더 내려가기에 뒤척임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활동만 해서 그렇다나. 병원에 잠깐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이 새벽 혈압을 재면 그들도 나를 깨웠다. 수면 혈압이 40이라 단순 저혈압인지 쇼크인지 확인 차 깨웠다고 했다.


혈압과 상관없이 원래 토요일은 자정부터 정오까지 자는 거 아닌가요. 토요일에 열 시간 자는 게 뭐 대수라고 그리 호들갑인가요. 싶었지만 말 대신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로맨틱 아침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 로맨틱 다시 만들지 뭐. 아니 이러면 로맨틱 아니고 19금인가. 흠흠.      



13년이 지난 지금도 주말에 안 깨우면 계속 잘 수 있다. 잠들면 천둥번개가 쳐도 못 들을 만큼 잠귀가 어둡지만 아이들이 “엄마 어쩌고...”하는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그럴 때면 남편의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엄마 잠들었으니까 건드리지 마.” 그 소릴 자장가 삼아 다시 열두 시간 수면을 이어간다.      


그대가 옆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식의 로맨틱은 신혼 때도 지금도 없다. 없어도 “엄마 잠들었으니까 건드리지 마.”가 우리 버전의 로맨틱이다. 낮은 혈압으로 조용해진 몸만큼 고요한 남편의 문장은 로맨틱을 뛰어넘은 충만함이다. 남편이라는 세계에서 맛보는 고요한 충만으로 폭삭한 이불을 한 번 더 휘감아 끌어안는, 상상만 해도 보드라운 주말을 또 기다린다.  




내일은 캐리브래드슈 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 대디는 없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