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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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를 써는 남편의 칼질은 수준급이다. 그의 직업이 요리사는 아니지만, 그는 주변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취사병 출신이다. 게다가 큰 부대가 아닌 작은 섬에서 취사병을 했기 때문에 소량의 식사를 맛있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 부대에서 모두 그의 요리를 좋아했다는 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라면을 어찌나 잘 끓이는지 이 세상에서 남편이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그 실력은 국물라면과 짜장라면을 가리지 않는다. 국물라면은 국물의 칼칼함을 잘 살리고, 짜장라면은 꼬들함에 자작한 국물의 비율이 환상적이다. 그래서 연인 시절에는 데이트 시간 연장의 치트키가 라면이었던 것도 같다.
결혼 후에는 왠지 허전한 밤이면 남편을 라면으로 유혹한다. 라면에는 언제나 열린 마음인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는 치열한 협상이 시작된다. 라면을 몇 개 끓일 것이냐! 라면 욕심이 많은 남편은 기본 3개이고, 배 터질 듯한 기분보다 맛있게 배부르고 싶은 나는 적당히 2개를 먹고 싶다. 2개는 항상 부족하다는 남편과 2개면 충분하다는 나의 협상은 말아먹을 밥이 있는가, 식후 디저트의 유무 또는 배고픔의 정도에 따라 2개 또는 3개로 협상이 마무리된다.
라면의 개수는 달라도 라면을 끓이러 가는 것은 항상 남편이다. 결혼 전에는 내가 끓인 라면도 맛있었던 것 같은데 라면 요리사를 옆에 두고 보니 굳이 미천한 실력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반찬을 차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게다가 신혼 초 내가 요리를 몇 번 시도해보려고 하면 사사건건 간섭하는 남편 때문에 약간의 짜증이 났던 나는 '옛다!' 하는 심정으로 우리 집 요리사의 자리를 그에게 흔쾌히 내주었다. 덕분에 남편이 만들어주는 맛있는 요리들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요리와 설거지 사이에서 선호도가 크게 나뉘지 않기 때문에 설거지를 담당하는 편이다. 가끔 입맛에 맞지 않는 요리가 만들어지면 다음에 더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 그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줘야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 네가 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에서 피드백의 양과 수위를 맞추는 노력이다. 자칫 과한 피드백은 요리사의 자리가 다시 나에게 넘어올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판을 짜야한다. 못한다고 잔소리말고 잘한다고 칭찬하면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 더 편해진 삶은 덤이다.
다음 주 월요일은 아코더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