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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07. 2021

연탄재가 진화하면 인덕션이 된다

잔열의 중요성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가 더 뜨거울까, 사용 직후의 인덕션이 더 뜨거울까. 어릴 때 연탄을 갈아봤고 지금 인덕션을 쓰고 있는 사람의 경험치로 당연히 후자다.


후자여도 이 시에는 여전히 짧고 강하게 압도된다.  내 아이들도 압도될까? 연탄재를 실물로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는 ‘꺼진 인덕션 무시하지 마라 / 너의 잔열이 그리 오래 뜨거운 적이 있느냐’가 더 와닿을지 모르겠다.      


인덕션의 잔열은 꽤 오래간다. 잔열 경고등이 꺼지지 않았는데 무심코 닦다가 불에 덴 듯, 아니 불에 데어 놀란다. 잔열인데도 짱짱하게 뜨겁다.      


내 아이들은 학교를 많이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는 걸 아쉬워했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학교에서의 일들을 말하느라 흥이 가라앉지 않았다. 학교를 별로 안 좋아했던 내게 아이의 행복함은 생소한 아름다움이었다. 조금 지겨워하고 많이 귀여워하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인덕션의 잔열만큼 오랫동안 뜨거운 이야기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학교가 셧다운 되고 비대면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학교 가고 싶어 쏭’을 불렀다. 단순하고 확실한 문장의 노래였다. 노래를 들으며, 급식의 위대함을 묵상하며 인덕션 앞의 나는 떡볶이를, 팬케이크를 만들어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나는 지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지금 꼭 해야 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별 일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들이 내겐 모두 별일이라 수시로 돌아버릴 거 같았다.      


아이들의 학교 사랑노래는 식지 않았다. 인덕션 잔열등이 당최 꺼질 줄 모르는 격이었다. 나는 어떤 일이 끝난 후에 이렇게 오랫동안 식지 않은 적이 있던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며 혼자 행복했던 시간들은 분명 있었지만 그 행복의 잔열은 없었다. 아이들이 오면 바로 분주해졌으니까, 끊임없이 불러대는 엄마 소리에 쿠쿠다스 부서지듯 집중이 깨졌으니까. 코로나로 내 시간이 확보되지 못하면서 마음벽에는 불만 곰팡이가 퍼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이라고 불만이 없었을까. 스물다섯 명이 깔깔거리는 교실을 떠나 15인치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는 게 뭐가 좋을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오프라인 학교에서의 즐거운 경험이 잔열로 오래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잔열은 곰팡이가 필 틈을 주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잠든 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코로나에 상관없이 계속 있었다. 그때의 행복감을 인덕션 잔열처럼 오래 가져가면 될 일인데 내가 잃어버렸다고 느낀 그 시간 하나만 빚쟁이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일상은 변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일상만 있을 수도 없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을 괜찮은 일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의 학교가고싶어 노래에 얼쑤절쑤 해주느라 잘 내려진 커피가 다 식어빠지는 걸 봐야 하고, 한 시간 수업하는 태권도장에 기대하다가 너무 금방 와서 곧바로 실망해야 한다. 그러나 전날 밤에 읽고 쓰면서 느낀 행복감의 잔열을 오래 유지해서 이 일상마저도 괜찮게 만드는 것, 이 잔열로 남아있는 곰팡이를 없애버리는 것, 그게 내 일상에 대한 예의다.      


코로나가 끝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까. 분명 그때만 생길 문제가 또 있겠다. 상상 못 할 문제를 막을 방도는 없으니 나의 행복 잔열을 오래 간직하는 것만이 방도가 될 것이다. 너의 잔열이 그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는 연탄재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이 아니다. 내가 기억해야 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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