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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20. 2021

거참, 김밥처럼 안 맞네

지팔지꼰

김밥을 좋아한다. 앱만 열면 온갖 김밥집이 다 나오는 세상이지만, 그래서 종종 사 먹지만 먹을수록 집에서 싼 김밥이 먹고 싶어 진다. 결국 구시렁대며 직접 만든다. 이런류를 위한 전문용어도 있다. 지 팔자 지가 꼰다는...


나는 내 김밥이 제일 맛있다. 문제는 나만 맛있다. 즉, 김밥을 싸도 학교 안 가는 아이들을 위한 상을 따로 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지팔지꼰이다. 그런즉 김밥, 카레, 짜장 이 세 가지는 일단 해놓으면 연속 두 끼는 먹어줘야 하는 음식 아니었던가. 왜 이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가. 내가 막 애를 다섯 낳은 것도 아니고 꼴랑 둘인데 이렇게 나랑 안 맞을 일인가.


나는 절대음감이다. 모르는 노래를 들어도 코드와 멜로디를 바로 찾을 수 있다. 실생활에서 하등 쓸모가 없다. 절대 눈썰미는 없다. 실생활에서 매우 불편하다. 덕분에 김밥 재료 분량을 못 맞춘다. 김밥을 말다 보면 이건 있는데 저건 없는 상황. 저걸 보충해서 다시 말다보면 이번엔 이게 없는, 거기서 끊고 남은 재료는 그냥 볶음밥 하면 되는데 꾸역꾸역 다른 걸 보충하는 뫼비우스 띠. 기어코 마트를 두 번 왕복하고 띠를 끊는다.


내가 만든 김밥을 좋아해서 나의 육아도 김밥이랑 비슷한가 싶다. 아이한테 A는 있는데 B가 아쉬운... 그래서 B를 채우다 보면 A가 갑자기 훅 떨어지는 상황. 어미가 건드려서 망했나 싶은 자책감을 갖고 A를 펌프질 하면 어디 가니 B야... 육아의 뫼비우스 띠다.


'저 사람은 이거는 딱 좋은데 저게 좀 부족해. 나한테도 이만큼 해줬으면 좋겠는데 살짝 모자라네. 에이~' 다른 사람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이다.


나의 김밥은 이 모든 관계의 데자뷔이었던가. 우엉, 오이, 계란, 햄은 있는데 단무지와 맛살이 없는 조리대를 보며 딱 떨어지는 만족함에 대해 생각한다. 단무지를 사러 나가야 하나... 할 때 문득 든 생각, 그럼 너는? 너는 얼마나 딱 떨어지는데?


엄마표 놀이로 3개 국어를 한다는,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휘리릭 지나간다. 남친와(남편 친구 와이프)가 집에서 열심히 시장을 분석해서 샀던 부동산에 금빛 소나기가 휘몰아쳤다지. 나는 친구와의 커피 약속을 까먹은 채 계속 잤던 날도 있고, 애한테 데리러 간대놓고 소설 읽다가 시간 놓친 적도 있다. 음, 쓰다 보니 나는 어디 하나를 채워서 딱 떨어지게 만들 수준조차도 안된다.


거참, 김밥처럼 안 맞는 게 원래 인생이었을지 모른다. 모든 재료를 정확하게 준비해도 옆에 와서 맛살 하나, 계란 지단 하나 날름 집어먹는 애들 때문에 숫자가 맞지 않는 일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집어먹는 아이가 없다면 내 눈대중이 잘못돼서 안 맞고, 그날따라 밥을 많이 혹은 적게 넣어서 또 안 맞고 그런 일상 말이다.


그러니 적당히 맞추는 삶, 기력이 되면 부족한 걸 더 채워 넣고 안 되면 좀 모자란 대로 맞추는, 없는 걸 보충할 여력이 없다면 있는 걸 잘 다독이는, 그게 인생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마트에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밥에 간을 조금 더 해서 단무지 간을 보충했다. 계란 지단을 두껍게 썬다. 참기름의 넉넉한 보충으로 상황을 봉합해본다. 내가 단무지가 없지 맥주가 없냐? 의 호기로 호가든 한 캔을 따서 옆에 둔다.


김밥과 맥주는 의외의 궁합이기도 했다. 안 맞는 맞음을 발견하는 눈은 이렇게 키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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