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Aug 21. 2021

훌떡 벗고 자전거를 탈 때 생기는 일

이렇게도 탈 수 있답니다

여름 내내 밤중 달리기를 했다. 땀이 눈으로 흐르는 순간 아찔하게 따가운 그 느낌을 즐겼다. 눈이 따가우면 어쩐지 오늘 하루를 매우 열심히 살았다는 기분이 들어서 더 즐겼다. 실제의 하루가 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 이따 뛰면 돼'로 퉁쳤다.


입추 바람이 시작됐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채웠다. 달릴 때 입던 옷 그대로 헬맷만 썼다.


매일 뛰던 둑방길을 벗어나니 자전거 부대만 남았다. 어떤 구간에서 나는 무리 지어 가는 청어 떼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다들 엄청 빠른 청어라 금방 나와 멀어졌지만.


자전거길 청어 떼는 박태환 전신 수영복을 입었다. 팔토시, 장갑, 관자놀이까지 올라온 마스크에 고글... 적어도 상체에서 살이 보이는 데는 없었다.


반면, 잠시 청어 3번이 됐을 때 나는 다른 청어에 비해 반만 입은 걸 알았다. 내 나시티는 등의 반을 훤히 드러낸 채 신나게 펄럭였다.


순해진 태양이 한강길에 쭈그리고 앉아 색칠놀이를 시작했다. 그림자가 앞바퀴 앞으로 길게 걸쳤다. 태양은 분명 내 뒤에 있지만 뻗어 치는 붓놀림은 나를 앞질렀다. 내 발은 페달링에 바쁘고, 붓은 색을 바꾸느라 바쁘고, 바람은 발을 응원하느라 바빴다. 이 모든 광경을 맨살로 처음 겪는 등 역시 햇빛과 바람을 받아내느라 바빴다.

바쁜 붓놀림이 만든 하늘

맨살 등에 햇빛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수영장에서도 불문율처럼 래시가드로 꽁꽁 싸맸다. 달리는 여름 동안은 완전히 어둑해진 후에만 나온지라 가로등 빛만 받았다.


나보다 시속 10킬로는 빠를 그들이 부럽지 않았다. 이 햇빛과 바람을 이렇게 넓은 면적으로 직접 받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부지런히 나가보려 한다. 청어 떼의 속도는 안 나도 그들보다 더 많이 가질 햇빛 호사를 누려보려 한다. 당분간 훌떡 벗은 자전거는 계속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미가 있든가, 입금이 되든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