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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18. 2021

재미가 있든가, 입금이 되든가

선택의 문제에서

"아니... 이렇게 시간을 어기면... ㅠㅠ"


친구의 카톡이다. 마감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누굴 도와주기로 했는데 정작 장본인이 연락이 없단다. 얘 혼자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너 그거 돈 받고 해?"

"아니... 무슨 돈을 받아... 그냥 의리지"


"재미있어?"

"니 눈엔 재미있어보이냐?"


"그럼 신경 끄고 니 딸이랑 인형놀이 한번 더 해"

"그러다가 내가 메일 놓치면 어떡해?"

"입금도, 재미도 없는 일에 왜 시간을 써. 지금은 니 딸 인형놀이가 훨씬 중요해!"


일반적으로 가정주부는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출근한다고 아침 댓바람부터 눈썹도 못 그리고 뛰어야 하는 인생은 아니지만 아침 댓바람부터 나가지 않는다고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다.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종종거리는데, 것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종종거리는데 혹자는 그 와중에 시간 도둑질을 한다. 


내 시간은 내가 지켜야 한다. 가정주부뿐 아니라 누구든지 간에. 내 시간을 내가 잘 쓰는 것도 어려운데 남이 훅훅 퍼가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퍼가는 그 시간이 재미가 있든, 입금이 있든 둘 중 하나는 돼야 한다. 


"야, 마감이 언제야. 마감 4시간 전까지만 봐주고 그 이후에 오면 너도 안된다고 해. 하루 전에 준대놓고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얘가 내 말을 어디까지 들을지는 모르겠다. 순해 터진 애라 마감 1시간 전에 연락 왔어도 지 밥 못 먹어가면서 같이 달려줄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랬다고 하면 내가 가서 한 대 때리고 올까... 


내 시간이 귀한 만큼 남 시간도 귀히 여기길. 내 시간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 내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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