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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23. 2021

기어이 돈 벌고 온 년

48명에게 전화를 못해서

옛날 옛날, 영희는 백화점 문화센터 강사 일을 했어요. 그 시절엔 어린이집 정부 지원이 없었거든요? 각 백화점들은 6개월 아가부터 ‘엄마랑 아가랑’류의 수업을 개설했어요. 생후 6개월이 문화센터까지 와서 뭘 배우냐고요? <우리 아이 뇌 쑥쑥 오감자극 놀이터> 이런 거 옛날에 꽤 유행했어요.


어느 날, 영희는 영희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영희는 문화센터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매니저는 대체 강사를 구하고 장례식장을 가라고 했어요.


당일에 무슨 재주로 구하냐고 했더니 그럼 수강생 어머님들 번호를 드릴 테니 한 분씩 전화해서 수업 취소를 허락받으래요. 참, 전화번호는 개인정보라서 일개 강사 따위에게 공개해도 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하니 만일 이 방법으로 하려면 그 동의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래요.


대체 수업이 가능한 강사들은 모두 본인 수업이 있는 날이었어요. 영희는 그날 4타임 수업, 타임당 12명의 어머님들이 있었고요. 48명에게 전화를 돌려 동의를 받느니 수업하고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어요.


매니저를 욕하고 싶었지만 그 자리도 수시로 바뀌는 걸 본 영희였어요. 매니저 역시 문화센터 매뉴얼을 읽은걸거라고, 내게 악감정이 있진 않을 거라고 영희는 스스로 토닥였어요. 비정규직 나부랭이의 필수 덕목은 셀프 치유거든요.


수업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갔어요. 별로 친하지 않은 영희의 사촌언니는 영희를 보자마자 “돈독이 올라서 지 키워준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해도 기어이 돈 벌고 온 년”이라고 인사했어요. 문화센터에서 상냥함을 다 써버린 영희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요. 비정규직의 작고 소중한 에너지는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되거든요.


영희는 그 뒤로 1년 반 동안 문화센터 강사를 더 하다가 그만뒀어요. 고작 2년이었지만 동화의 소재는 많이 남기고 떠난 문화센터에게 배꼽인사를 해요. 강사를 관둔 영희는 그나마 있던 명함도 없어지고 존재감 없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오늘의 동화 끝.  




현실에서는 불금을 못하는지라

여기서만이라도 불금을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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