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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3. 2021

베비로주를 아시나요

그 시절 파워블로그

10년 전쯤, 네이뇬에는 파블이라는 게 있었다. 파워 블로거의 줄임말이다. 2016년에 네이뇬측에서 파워블로거 제도를 종료하겠다고 공지를 올렸다.


파워블로거의 폐지를 이끌었던(?) 인물은 베비로주를 비롯한 당시의 파블들이었다. 4명이 위법행위로 걸렸는데 인당 500만 원의 벌금이 나왔다. 그들은 요즘 말로 협찬이면서 협찬 아닌 듯 뒷 광고를 하면서 억대의 수수료를 챙겼다. 문성살은 8억, 베비로주는 7억여 원을 받았다고 했다. (관련기사)


베비로주가 1억이나 적은데 더 시끄러웠던 이유는 깨끄미 때문이었다. 과일과 야채 등을 오존으로 살균 세척하면 농약을 완전히 씻겨준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깨끄미에 일반 수돗물을 넣어서 돌린 후 목욕할 때 쓰면 거의 신비의 샘물이 된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나도 깨끄미를 샀으니 알지!


그 후에 제품 사용자들이 두통과 구토 증상을 호소했다. 한국소보원은 해당 제품의 오존 농도가 통상 기준인 0.1ppm을 초과한다며 자발적 리콜을 권고했다. 베비 측은 기준이 다르다며 이를 거부했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베비는 잠수를 탔고 무려 10년 후, 깨끄미를 구입했던 분께 사죄한다며 연락처를 남기라는 글을 올렸다. 물론 금방 비공개됐고 나 역시 연락처를 남기지 못했다. 남겼으면 환불됐을까?


다행히 나는 두통이나 구토는 몰랐다. 나도 첫 아이 낳을 때쯤이라 아이를 위한다며 야심 차게 구입하긴 했는데 소형 가전이라고 하기에 너무 커서 수납도, 사용도 너무 불편했다. 깨끄미를 돌린 후의 비릿한 냄새가 좀 기분 나쁘기도 했다(아마 이게 초과 오존이었나 보다) 기운이 남아도는 날만 잠깐 쓰고 거의 다용도실에 박혀있던 중에 이 난리를 접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더 박혀있던 깨끄미는 어느 분리수거 날에 소형가전 수거함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가전은 끊임없이 나온다. 광고는 날로 진화해서 광고인데 영화 같다. 장르는 판타지, 저 새로운 제품을 사면 나의 생활이 획기적으로 변할 거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어느 때는 제품 자체보다 광고에 더 빠져들 만큼 광고가 이미 광고를 넘어섰다. 광고 이상이 된 광고는 나도 모르게 클릭클릭으로 인도한다. 그렇게 결제까지 클릭하는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깨끄미가 튀어나와 말한다.


"어제까지 이거 없이 잘 살았는데 이게 생기면 니 생활이 막 얼마나 나아질 거 같아? 날 생각해야지. 그런 건 없어. 급할 필요는 더욱 없고. 얘가 나처럼 몇 달만에 사장될지 누가 알겠어?"


깨끄미의 뼈 있는 상냥함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폰을 내려놓는다. 36만 원짜리 레슨 유효기간이 10년이나 가는 거 보면 깨끄미도 나름의 역할은 잘하고 있는 듯하다. 출하될 때 역할과 좀 많이 다른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10년간 의도치 않은 역할을 잘해주고 있으니 앞으로의 10년도 꼭 그래 주기를, 어디선가 썩지 못하고 굴러다닐 깨끄미에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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