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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5. 2021

아이유를 만났다

feat. bpm160

지금이야 프로듀서로, 연기자로 활동하는 선배님이 됐지만 그에게도 새싹 시절이 있었다. 새싹같이 청아한 목소리로 좋은 날의 삼단 고음을 내지를때 삼촌들이 삼단 콤보로 쓰러졌고 아이유는 그 위에 자신의 이름을 진하게 각인했다.


암사나들목에서 팔당으로 가는 길목에  깔딱고개가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의 숨을 깔딱깔딱 넘어가게 할 만큼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전국민 아이유 각인 후, 깔딱고개는 아이유 고개가 됐다. 고개가 세 번이나 있어서 그렇다.


올 봄, 내가 처음 만난 아이유는 딱 절반이 한계였다. 가을이 왔고 60프로까지만 가보자는 마음으로 아이유를 두 번째 만났다. 여름 내내 한 달리기로 허벅지 엔진이 진화했나, 반보다 조금 더 갔다.


bpm160,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짐머의 곡이다.  기본 7박에  변박도 나온다. 아이유 만나는 세 번째 날, 목표는 80프로였고 어쩌다 보니 bpm160과 함께 넘게 됐다.


문제는 bpm160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 내가 반까지 왔는지, 80프로를 왔는지 모르겠는 거다. 정신없는 겹박과 변박 때문에 그랬다. 이쯤에서 내릴까 싶다가도 속삭이던 콰이어가 갑자기 우와왁 커지고 현악 40인조틱한 사운드가 와다다다 달리면 나도 엉겹결에 페달을 막 밟았다. 그러다 곡이 끝났다. 덩달아 아이유 오르막도 끝났다.


이제 나오는 내리막은 막 출동준비를 마친 환장하겠는 가을야경이 빛을 하나씩 밝힌다. 더 환장하는 가을바람이 아이유를 넘느라 고생한 세포를 일 대 일로 둥기둥기 해준다. 마침 초저녁 보름달까지 말갛게 떠오르면 사운드트랙에 맞춰 이대로 날아올라 E.T랑 조우할 것만 같은... 이라고 쓰려다 보니 이티 사운드트랙 한스짐머가 아니고 존 윌리암스구나. 아무튼.


자전거고개만 그럴까. 인생의 고개도 이렇게 얼레벌레 넘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부터 비장미를 버려야겠지.


비장해서 잘 넘으면 다행이나 비장해서 잘 넘긴적이 별로 없는 거 같다. 오히려 bpm160에 한 눈 팔 듯, 분명 가고 있는 것도 맞고 허벅지 터지는 것도 맞는데 그 무게를 의식하지 않을 때 넘을 수 있었다.


무게를 의식하지 않음 자체가 일종의 초월이다. 알게 모르게 단련된 여름달리기 허벅지 공도 있겠다. 그렇 답이 더 선명해진다. 비장으로 넘지 않고 평소력으로 넘어야 한다는 것.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새긴다.


그렇게 아이유를 만났고, 아이유를 이겼다. 하루살이 오만 마리가 끈덕지게 따라붙긴 했지만 가을 야경에 취해 그들의 근면성실함까지 허허 웃어버렸다.


한강 물결에 일렬 집합한 마천루 조명들은 저들의 윤기를 뽐내느라 바빴다. 그들이 바쁠수록 내 눈은 즐거우니 하루살이마저 귀여워지는 공간의 축복은 여기 다 모여있었다.


아이유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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