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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6. 2021

아이유를 방해하는 방귀

생각지도 못한 노동송

이 아이유가 그 아이유가 아니라는 건 이전 글을 읽으셨다면 다 아실 테고.

(관련링크 : 아이유를 만났다)


그렇게 아이유를 이기고 기쁜 마음으로 다음날 또 만나러 갔다. 주인로 작곡가님의 곡도 모았다. 드라마/영화 배경음악을 하는 주인로 님의 곡은 에픽이 많다.


에픽(epic) 음악은 타노스를 격파하러 마블 캐릭터가 군집할 때 깔리는 사운드를 생각하면 딱 맞다. 제목도 난리다. 악귀가 되어라, 계략의 시작, 죽음의 고리, 피로 물든 욕망 등등. 이런 곡이 내겐 라이딩 노동송이다.  


주인로 님이 에픽만 하는 건 아니다. <식샤를 합시다>의 곡들을 보면 똥꼬 발랄의 절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필 극강의 똥꼬 발랄이 아이유 고개 중반에서 나왔다. 음악이 어찌나 방귀를 뀌어대는지.


음악 속 방귀소리가 웃겨서 다리 힘이 빠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못 넘을 거 같다.


시아버지께 이 자전거를 물려받은 지 4년이 넘었다. 그동안 왼쪽 기어를 본 적이 없다. 있으나 있지 않았던 기어가 급해지니 보였나. 잡아 내렸더니 두둑, 하며 바퀴가 가벼워진다. 오옷! 여기도 기어가 있었쒀! 신대륙을 발견한 마음으로 아이유를 넘었다.




내리막을 달리는데 강 건너 건물 사이로 해가 까꿍 놀이를 한다. 까꿍 놀이 아기 웃음을 시각화하면 바로 이 광경이 아닐까. 건물 뒤에 숨었다 나오는 햇빛이 한강에 촤르륵 깔리면 아기의 까르르 웃음이 들린다. 봐도 보고 싶고 들어도 듣고 싶은, 햇빛이 물결을 만나면 무음의 소리를 낸다.


그 사이 방귀가 끝나고 다시 에픽이다. 에픽과 까꿍놀이는 탈레반의 주기도문만큼 안 어울리는데도 동시에 취한다. 그래, 내가 이러려고 가을 자전거를 타지. 흥에 겨워 어설픈 힙댄싱을 한다.


계절별 옷 정리가 싫었다. 왜 사계절 씩이나 있어서 일거리를 만드니. 그러다가 까르르와 빼는 하늘을 만나면 계절 변화가 그저 감사하다. 고작 30분 이동으로 만나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이 세계는 너무 일찍 끝난다. 너무 아깝다. 백일 갓 지난 남친의 영장을 보며 하루가 아까운 아가씨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려나. 나도 하루라도 더 만나려고 낑낑대며 스트레칭을 한다. 그래야 내일 또 페달을 밟을 테니.

9월 5일 저녁 7시 잠실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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