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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8. 2021

인간관계에 깔리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

오래 달리기

체육센터가 문을 열었다. 대신 비말 방지를 위해 트레이드 밀의 최대속도는 8이다. 인당 사용 시간인 50분 남짓 뛰면 거리도 8km가 찍힌다.      

    

10대와 20대의 체력이 가장 좋고 그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라고 하던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청소년기에 800미터 오래달리기를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마흔을 훌쩍 넘고는 8km를 달린다. 회춘이라고 하고 싶지만 몸이 유기체임을 진짜 몸으로 인식해서 그런 것 같다.      


30대 끝자락 어느 날, 등의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면서 어렴풋이 유기체를 인식했다. 주사는 통증을 일시적으로 줄일 수는 있지만 근본 치료는 아니라고. 바른 자세와 꾸준한 운동이 없으면 언제든 또 아플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잠은 자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선생들은 팔 스트레칭을 할 때 귀와 어깨를 멀리 두라고 했다. 등이 펴졌다. 주 타깃은 있었지만 그 타깃을 위해 유기적으로 몸 전체가 도왔다. 맨몸 운동부터 시작해서 달리기로, 중량운동으로 그때그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40대가 됐다.     

 

8km 달리기를 하고 나면 꼭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한창 공부할 나이지만 한창 인간관계로 세상이 종종 무너지기도 했던 때다. 몸이 유기체인 것처럼 관계도 유기성이 있음을 이해했다면 조금 덜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누가 날 싫어할 때, 그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나 혼자 쏟을 필요도, 그래서 될 일도 아니라는 그 인식. 돌아보면 쉬운 일인데 막상 닥쳤을 때는 어려웠던 그 일은 그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 10대와 20대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인간관계는 아마 이 유기성을 말로만 이해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10대가 이 유기성을 진짜로 이해한다면 좀 징그러울 거 같기도 하다만.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이가 친구 문제로 한참 서러움을 쏟을 때,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네가 모든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누구든 너를 싫어할 수도 있다고. 물론 지금은 그게 태산처럼 중요한 일이지만 매번 태산이 되면 그 태산에 깔려 죽는다고. 가끔은 태산을 그저 언덕으로 보는 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지만 보드랍게 부는 초여름 저녁 바람은 아이의 굳어진 얼굴을 스르르 풀어줬다.     

 

아이가 들어간 후 핸드폰 앱을 8km로 세팅했다. 무한을 닮은 8처럼 아이의 고민도 나의 고민도 살아있는 한 끝없이 이어지겠지. 고민으로 머리 아플 때 이렇게 뛰어버릴 수 있는 힘이 내게 오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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