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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10. 2021

위대한 기저귀

그 많던 아이용 가전은 어디로

0.84 어디 나온 숫자일까.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수다. 유초중고 학생은 2021년 4월 1일 기준으로 600만명대가 깨졌다(2011년 4월 1일에는 760만명이었다)


2011년 4월, 큰 아이도 저 760만명에 있었다. 유축기 2개와 젖병 소독기, 이유식 마스터기가 있었다. 그땐 거의 생명줄로 여긴 물건들, 집에 유배된 쓸쓸함을 달래기 위한 쇼핑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작 쓸모는 없었지만.


한 시간을 유축해도 30ml가 안 채워져서 더 좋다는 유축기를 샀다. 뽑아내는 압력이 세긴 했다. 살점이 터져서 피를 뽑긴 했지만. 젖병 소독기는 무슨 균을 박멸한댔는데 애가 젖병을 박멸시키는 바람에(어떤 젖병도 물지 않음) 넣을 젖병이 없었다.


다른 가전에 비해 아이용 가전은 쓰임이 짧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필요를 다한다. 그래서 중고거래가 활발하기도 하고 중고로 돌리는 눈길을 잡기 위해 신상도 열심히 나온다. 모든 기업이 그렇게 이윤을 추구할 때 이윤과 반대로 가는 기업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그래


하기스에서 초소형 기저귀를 만든다. 그냥 작게 만든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생산설비 자체를 다시 갖춰야 하는 작업이란다. 주수를 채우지 못하고 나오는 이른둥이를 위한 기저귀다. 올해 태어난 신생아가 18만명이라서 유아용품 업계가 비상이라는데 이른둥이는 3만명 정도다.


18만명도 위기라고 하는데 3만명은 오죽할까. 그걸 알면서도 하기스에서 이른둥이 기저귀를 만들고 있다.


어떤 버림, 다른 버림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버려졌던 아이용 가전제품을 떠올렸다. 적자를 감수하는 하기스 초소형 기저귀도 떠올렸다.


둘다 돈을 버리는 건 똑같은데 어떤 버림은 쓰레기를 만들고 어떤 버림은 생명을 만든다. 쓰레기도, 적자도 만들지 않고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불가능하다면 그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눈여겨볼 일이다.




릴케는 그의 시 <엄숙한 시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내가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딘가의 아픈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완벽하게 이타적으로 살 수는 없으나 방향을 돌릴 수는 있다. 내가 버린  유축기를, 하기스를, 릴케의 시를 떠올리며 그 방향을 다잡는다.


릴케의 시가 당연함이 될 때 지금의 동굴같은 어두움이 조금은 물러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0.84도 조금 더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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