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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17. 2021

남의 남편과 자전거를 타면

이럴 줄은몰랐;;

아이유를 돕는 방귀에서 밝혔듯이 자전거 라이딩 노동요로 주인로 작곡가 님의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놨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출발했는데 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 나온다. 다른 리스트에 라흐 협주곡이 있긴 하니 섞였나? 하면서 그냥 계속 갔다.


계속 가는데 이상하다. 피아노로 시작해야 하는데 바로 오케스트라가 시작했다. 스크롤이 밀렸나? 했는데 더 이상한 건 피아노가 아예 안 나온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분명 라흐 협주곡이 맞는데 이건 뭐지. 내가 꿈을 꾸나.


너무 이상해서 자전거를 세웠다. 폰을 꺼내보니 응? 주인로 님 리스트 맞다.


주인로 님이 드라마 ost로 라흐 협주곡을 피처링했다. 대신 피아노를 빼고 오케스트라 자체를 메인에 내세웠다. 그 뒤를 받쳐주는 스트링은 따로 만들어 입혔다. 대박, 완전 천재!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한국에서 꽤 인기 있는 곡이다.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다들 아항~ 할 만큼. 그렇게 인기 있고 자주 연주돼서 피아노가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피아노 없는 라흐 2번은 페달 없는 자전거고 세탁 버튼 없는 세탁기라고 할까.


라흐마니노프야 뭐 원래 멋있었고 박제된 그의 곡을 이렇게 바꾼 주인로 작곡가 님도 멋있었다. 멋있으면 다 옵하. 둘 다 남의 남편이지만, 심지어 주인로 작곡가 님은 나보다 어리지만 방탄도 옵하라 하는 판에 옵하 안 될 사람이 어딨어!라고 우긴다. 첫사랑이 격렬했다면 방탄 또래 자식이 있을지도 모르는 내 나이는 잠시 잊도록 한다.


너무 당연한 것을 '정말 당연할까?'라고 질문하는 것,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전화는 당연히 집 아니면 공중전화였는데 그게 왜 당연해? 하는 순간 휴대하는 폰이 되었다. 휴대폰은 당연히 통화를 위한 기계였는데 그게 왜 당연해? 하는 순간 제7의 장기가 되어버렸다. 언젠가 페달 없는 자전거, 세탁 버튼 없는 세탁기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진다.


열어분,
피아노가 없는 라흐 협주곡이
여기 있어요.


라고 방송이라도 하고 싶다. 관심 가질 표본 집단이 너무 적어서 "그게 뭐?"소리를 먼저 들을라나.


그러든가 말든가 반복 재생되는 두 유부남 옵하님은 나의 페달을 가열차게 같이 밟아줬다. 평속이 18로 올라갔다. 물론 한강 평속 18은 내가 10명 정도 추월할 수 있고 나를 추월하는 라이더가 50명쯤 되는 아주 쪼랩이지만 나의 옵하들과 함께 하며 평속도 올리니 그저 아멘이었다.

얼굴 벌게지게 페달을 밟을 동안 하늘도 같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 옵하님도(읭??) 제 맘을 알아주시고 저랑 똑같아지는군요. 역시 옵하가 좋아요, 했다. 습관성 행복 증후군을 주는 가을 하늘에 라이딩 힙 댄싱으로 인사했다.


<아주 보통의 행복>을 쓴 최인철 작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자식의 학벌이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의 잔고라고 했다. 좋아하는 것의 천재들이 더 많아져야 더 행복해지지 않겠냐고 묻는다.


피아노가 있는 라흐 협주곡, 피아노가 없는 라흐 협주곡, 이 둘과 어울리는 해가 질랑말랑 하는 한강 하늘, 영동대교 아래의 무성한 나무내음까지. 청각, 시각, 후각이 결합된 좋아요가 생겼다. 좋아하는 것의 천재지수를 이렇게 높인다.

영동대교라는 단서는 전혀 없지만 여하튼 영동대교 남단과 무성한 나무


기어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게 하는 붉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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