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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Nov 06. 2021

답을 주던 자가 묻는 자가 될 때

그래도 배운다

길석 님의 오빠들(나의 외삼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길석 님의 의견을 물었다. 할머니는 당신 아들보다 며느리 길석 님을 더 신뢰했다.


늘 답이 있는 길석 님은 내가 청소년이 되자 내게 주는 답의 범위를 넓혔다. 너른 한계를 주고 그 안에서 내가 뭘 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남들 눈엔 방임이었고 내겐 적당한 자유였다.


얼마 전, 대전에서 길석 님에게 어떤 수술을 권했다. 길석 님은 서울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는 아산병원을 예약했고 아산 의사는 수술 없이 약으로 된다고 했다. 길석 님은 기뻐했지만 슬퍼했다.


약물치료는 기쁜 일이었다. 병원 시스템은 슬픈 일이었다. 코로나 QR, 접수, 기존 병원의 자료 등록, 가정의학과 접수 및 소견서 수리, 소견서를 본과에 등록, 사전 문진, 수납과 처방전 발급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길석 님이 한 번에 이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스크와 투명 아크릴 판에 가로막힌 상담에서는 나의 통역이 필요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 같아. 그치"

"병원이 워낙 커서 그래. 울 엄마 제일 똑똑해. 그런 말 하지 마"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사전 검진하는 수간호사 말을 재차 묻는 걸 보고 길석 님에게 시작된 할머니를 느꼈다. 내가 알던 그 선명함은 어디 갔는지. 그날의 나와 길석 님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프고 기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빠가 아산병원에 왔다. 길석 님은 서관 로비에서 기다리고 내가 아빠를 데리고 다녔다. 코로나로 보호자 1인만 허용되어서다.


아빠와 내가 다시 로비에 왔을 때 길석 님은 가방에 발을 올리고 내 카디건을 둘둘 말아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다. 니 엄마는 사냥개라고. 일어나면 되게 빠르고 앉으면 금방 잔다고.


되게 빠른 건 이제 잘 모르겠는데 여전히 잘 자는 게 고마웠다. 아니, 좀 슬펐지만 그 슬픔이 이 순간 전체를 지배할 만큼은 아니었다. 인기척에 일어난 길석 님이 말했다.


"니 애들이 똥기저귀 차고 삐약거리지 않으니 니가 아빨 데리고 다니지. 너 없었으면 우리 둘이 얼마나 헤맸을꼬. 덕분에 잘 잤네. 니 애미가 복은 많다. 그치?"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일으키는 것, 행여 기댔다면 기댈 수 있는 그 상황을 그저 감사해하는 것. 답을 주던 자가  자로 바뀌었지만 바뀐 그대로 길석 님은 적응 중이었다.


아빠와 병원을 돌 때 각종 상상들이 마음속 육중한 추가되어 나를 잡아끌었다. 길석 님의 복 이론과 입가에 살짝 흐른 침은 추를 녹여버렸다. 티 안 나게 길석 님의 입가를 닦아주며 내 가슴이 펴졌다. 귀와 어깨도 덩달아 멀어졌다.




토요일 아침, 아빠가 퇴원했다. 외래일정을 내게 주며 길석 님이 말했다.  


"느이 아빠 담주 외래 다 니가 해라. 니 덕에 나 좀 쉬자"


나는 기꺼이 아빠 병원 시중을 들려한다.




아온 날들로 살아갈 날을 가늠한다. 둘의 간극이 크면 상실감이 생길 거 같았다. 길석 님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길석 님은 돕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걸로 상실감을 상쇄한다. 감당할만한 상실감은 그렇게 안고 가는 거라고 길석 님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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