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의성어의 다른 상황들이 나의 오전을 채운다. 첫 번째 타닥타닥 만 하고 싶은 마음이 욕심 같은데 좀처럼 포기가 안 돼서 어느샌가 나랑 싸우는 내가 있었다.
‘잠깐만요,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다소 재밌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정치 경제 시간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의 그 애덤 스미스 맞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어머니와 살았고 어머니가 그의 의식주를 돌봤다고 한다. 만일 그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연구를 했다면 이 먼 나라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실렸을까?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가 토지와 값싼 노동력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을 ‘시초 축척’이라고 한다. 노동자는 가정에서 아내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되는 돌봄 서비스로 또 다른 시초 축척을 했다. 책은 시초 축척에 길들여진 사회가 엄연히 있는 노동을 없는 노동으로 치부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15km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감을 모아 오는 아프리카 어디의 어린이는 국가 경제발전에 역할을 하지만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에 이 활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아프리카뿐일까. 코로나로 집 밖에서 긴급 돌봄을 하는 계약직 교사 임금은 국민 총생산에 들어가지만 똑같은 일을 하는 집안의 긴급 돌봄 노동력은 통계를 못 만난다.
은유 작가는 그의 아들이 ‘보이지 않는 손’보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아는 교양인으로 키우기라는 계획이 있다고 했다. 나도 은유 작가를 따라 다시 다짐한다. 다음 주에도 재활용 분리수거는 우리 집 두 초등학생 몫이 될 거라고. 각자의 방을 치우고, 반팔티는 적절히 접어서 수납 박스에 넣게 해야지. 내가 접어놓은 수건도 애들이 화장실 두 곳에 적절히 나눠 넣어놓을 것이다. 그 '적절히'를 자연스레 하는 순간, 은유 작가의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어렴풋이 느끼리라.
다른 종류의 타닥거림 속에서 괜히 나랑 싸우다가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거 같은 날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오래 걷고 조금 뛰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너무 많이 괜찮지 않아도 돼.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나의 걷기 뛰기는 여전히 계속될 테지만 적어도 쓸모없다는 마음을 달래기 위한 움직임은 아니고 싶다. 대신 읽기를 통해 싸움의 뿌리를 찾고 아이들 세대에서 어떻게 뿌리를 끊어야 하는지, 끊지 못하면 최소한 약화시키는 일을 고민하련다. 그 사소함이 쌓여 다른 가능성이 넘쳐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