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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12. 2022

십 원짜리 동전에 4층 석탑이 있는 이유

무용하게 의미 있는 덕질에 관하여

(2w 매거진 23호에 실린 글입니다)


십 원짜리 동전 뒤의 다보탑은 4층 석탑이었고 우린 4명이었고 우리 그룹과외 선생님은 우리 보고 돌머리라고 했다. 그마저도 웃을 거리였던 여중생들은 본인들을 십 원 클럽이라 칭했다.


십 원짜리 동전의 다보탑은 90년대를 통과하는 나와 친구들의 결속 코드였다. 십 원 클럽이 30년 지난 지금도 카톡에서 시시덕거리는 걸 보면 천 년 넘게 서있는 다보탑의 단단함이 우릴 묶어줬나 싶기도 하다.

공부 빼고 다 잘했던 무용한 여중생들은 그들의 우상으로도 십 원 클럽을 만들자 했다. 각각 이승연, 임지령, 곽부성 덕후였다. 우상 없는 나는 십 원 클럽의 완성을 위해 누구를 좋아해야만 했다. 좋아할 사람을 찾으려다 걸린 사람이 당시 이오공감의 이승환이었다.

나도 비로소 친구가 잡지에서 오려다 준 사진을 받고 기뻐할 자격이 생겼으나 골라도 왜 꼭 그런 사람을 골랐는지. 이승환은 다른 연예인에 비해 잡지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횟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기뻐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기뻐하긴 했으나 유체 이탈한 반대쪽의 나는 이게 기뻐할 일인가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중생의 과한 연대감으로 “얘는 이승환 부인이야.”식의 루머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나를 좋아한다는 어떤 오빠는 소문을 믿고 이승환 LP판과 브로마이드를 내게 투척했다. 선물이 이렇게 감흥 없기도 힘들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승연, 임지령, 곽부성은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잊혔다. 이승환은 애초에 대중 앞에 많이 서지 않아서일까. 본인들은 꿈에도 모를 십 원 클럽에서 가장 롱런하는 연예인이 됐다. 우리는 여고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연예인도 바뀌었다. 애초에 열정이 없던 나는 인덕션 1단계 화력의 미적지근함으로 이승환 바라기를 이어갔다.  

스스로에게 세뇌당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도 이승환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을 모으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지만 그의 기사를 찾아 시험공부하듯 몇 회독을 했다. 한참을 읽다 보면 이 무슨 무용한 짓인가 싶어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으나 그 벌떡은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숙제로 찾은 이승환은 그렇게 쭉 공부처럼 이어졌다.

20대 중반이 된 어느 날, 이 정도 공부하면서 콘서트 한 번 안 가는 내가 예의 없다고 느꼈다. 마침 연말 공연 예고가 올라오던 때였다. 티켓을 샀지만 가는 순간까지 이 돈을 주고 굳이 가는 게 맞는가라는 갈등은 계속했다. 무용한 일에 거금을 쓰는 거 같았다.

콘서트가 시작하면서 나의 갈등은 전생이 되었다. 시디 속 이승환은 없었다. 대신 조명과 사운드로 나를 관통하는 이승환이 거기 있었다. 잠실 펜싱 경기장에서 5시간을 그와 함께 뛰었다. 같이 뛰면서도 시디보다 더 시디 음질 같은 그의 라이브에 나는 내 목소리도 가져가라는 듯 환호를 질러댔다. 콘서트 후 이틀간 목이 쉬어 말을 못 했어도 그가 가져간 목소리라며 나는 혼자 기뻐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12월은 이승환의 달이었다. 콘서트 장인인 그는 수시로 공연을 하긴 했지만 나의 열정은 딱 12월로 한정됐다. 12월이 되면 그는 내 꿈속에 여러 버전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와 집 앞에서 키스를 하고 교토로 벚꽃 여행을 갔다. 매해 그의 연말 콘서트에서 나는 내 속에 돌고래 음파 같은 고음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몇 시간을 작두 타듯 신들리게 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 최대치의 판타지와 콘서트가 연말마다 있으니 달마다 쫓아다니는 건 어쩐지 무용한 짓 같았다.

그 무용한 짓을 할 수 있을 때 더 할 걸 그랬다. 출산과 육아를 거친 후 한동안 못 갔던 콘서트를 갔더니 나만 늙어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대를 통째로 들어 올리고 있는데 나는 나 하나 들어 올릴 체력이 없었다. 그의 무대를 의자에 앉아서 봤다. 콘서트 관객 평균 연령을 높이는 자 누구냐고 손들어보라는 그의 말이 미안하기도, 우습기도, 서글프기도 했다.

지금도 이승환 기사가 뜨면 수험생 모드로 몇 번씩 정독한다. 그가 올리는 피드를 보느라 페이스북 계정을 유지한다. 그가 사회비판 목소리를 내면 저러다 다치면 어쩔까 마음을 졸이다가 세상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며 도리질한다. 그가 매해 하는 심장병 어린이 후원에 날짜와 액수를 맞춰 입금하는 걸로 도리질했던 마음을 사죄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런 미적지근한 덕질은 계속될 것이다. 나의 덕질은 BTS 이모 아미들처럼 삶의 활력소도 되지 못하니 세상 무용한 일이겠으나 세월의 의리라는 측면에서는 무용하게 의미 있다고 믿는다. 당사자는 알지도 못할 의리를 혼자 지키는 중이다. 이승환 피드에 악플을 단 아이디를 찾아가 칼 꽂은 짚신 인형을 상상으로 보내며 노트북 창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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