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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Nov 21. 2022

나 좀 착하게 살았나

메이크업 샵과 스튜디오에서 초대받던 날

이유 없이 메이크업을 하고 싶은 날이 있었다.  화장품은 눈썹연필과 팩트, 립밤밖에 없는지라 리뷰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메이크업도 리뷰로 비용을 퉁치는 곳이 있었다. 메이크업을 했으면 사진을 찍어야지, 라는 생각에 집 근처 스튜디오도 신청을 했다. 해놓고서도 이쪽으로는 아카이빙 된 게 없는데 되겠어? 했는데 둘 다 됐고 같은 날짜에 예약하기까지도 성공했다.


이쯤 되면 드는 합리적 의심, 나 좀 착하게 살았나?




착한 나를 우쭈쭈 해주며 아침 바람을 뚫고 건대입구 근처 샵에 갔다. 하고 싶은 스타일 있으세요?라는 말에 어버버하고 있으니 애기 실장님이 초승달 눈으로 웃으며 ‘제가 알아서 해볼까요?’라고 말한다. 아유, 젊은 아가씨가 독심술도 할 줄 아네…라고 말은 하지 않고 같이 웃었다.


메이크업 전문가가 90분 동안 빚으면 셀카 앱에서 보던 그 여자가 실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실장님은 본인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운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자, 이제 착하게 산 나님은 스튜디오로 넘어가 본다. 생각보다 큰 스튜디오에 놀라서 속으로 ‘왜 이런 데에서 리뷰어를 구했지?’라고 하고 있는데 사진작가 님이 하고 싶은 스타일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이번에는 어버버 대신 “공모전 붙은 게 있어서 내년 초에 책이 나오는데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책 한 권 분량으로 사진 포즈 주문 사항이 쏟아진다. 고개를 오른쪽 15도, 왼쪽  35도, 검지 손가락은 가운데 손가락 관절을…, 아니 아니 반대 손으로 해야죠. (네, 제가 오른쪽 왼쪽 구분이 아직도 어렵습니다만)


이번엔 책이 안 써지는 눈빛, 퇴고하는 눈빛, 기타 등등을 하랜다. 과연 실제 하는 눈빛인지 물을 새도 없이 수십 컷이 지나갔다.


우리 작가님 사진 잘 찍으시니까 옷 하나 빌려줘야겠다. 옷 갈아입고 더 찍어볼래요?”


이쯤 되면 나 착하게 산 거 확실하지 않을까. 리뷰어로 왔는데 옷까지 빌려주니 말이다.




“어머, 작가님. 책이 경쾌해서 작가님도 그런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사진은 우아하시네요. 우리 드디어 1월에 만나는 건가요. 호호~”


텍스트로 표현 안 되는 귀여운 부산 사투리를 쓰는 재단 직원과의 통화였다. 1월에 만날 그 여자는 사진 속 그여자 아닙니다만.


그날 저녁, 메이크업을 지우고 리뷰를 쓰는데 리뷰 속 사진에 다른 존재의 내가 있었다. 내가 나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사진의 나는 나 이상이었다.


애써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90분으로 만드는 다른 존재라면 노력말고 기분전환용으로 괜찮지 않나.


그러니 더 착하게(?) 살아서 출간식 하는 1월의 어느 날도 이렇게 변신한 모습으로 부산에 갈까 하는 목표가 생긴다. 그 여자 한 번 더 만나고 싶다.


네이비는 내 옷, 화이트는 스튜디오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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